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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신반포 15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원펜타스 단지 전경.
서울 서초구 반포동 소재 신반포 15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래미안 원펜타스 단지 전경.

 

“삼성물산은 경쟁 수주를 하지 않는다.” 삼성물산 주택사업의 법칙이 깨지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엿보이던 변화의 흐름은 점차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한남뉴타운 4구역 시공사 지위를 두고 강적인 현대건설과 한판 대결을 벌이게 됐다. 양사는 글로벌 설계사무소와 협업한 재건축 설계 조감도까지 홍보하며 조합원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2015년 GS건설과 맞붙었던 서초무지개아파트(현 서초그랑자이) 수주전 이후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재건축, 재개발 시장을 떠났었다. 당시 시장에는 삼성물산이 업계 1위 브랜드인 ‘래미안’과 함께 주택사업본부를 KCC에 매각한다는 소문도 돌았다. 주택사업 자체가 첨단을 추구하는 그룹 방침과 어긋나는 데다 경쟁사와의 신경전 및 하자처리 등 과정에서 잡음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같은 추측에도 래미안은 5년여 만인 2020년 4월 서초구 반포동 소재 신반포15차 수주와 함께 돌아왔다. 그해 5월 대우건설을 상대로 반포3주구에서 69표 차로 신승했지만 이후에는 잡음을 내지 않는 ‘클린 수주’를 내세우며 경쟁사와 맞붙지 않았다. 삼성물산은 “일부러 수주 경쟁 자체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OS(아웃소싱)요원을 활용한 불법 홍보활동이나 출혈 경쟁 등을 피하는 것”이라는 입장이었다.그런데 최근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삼성물산은 한남4구역뿐 아니라 성수전략정비구역, 압구정 재건축 등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내부 기조가 상당 부분 바뀐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 원인에도 관심이 쏠린다.

 

잡음 감수한 수주전

삼성물산은 주택시장에 귀환한 이후 여러 재건축, 재개발 수주전 ‘하마평’에 올랐다. 그중에선 용산구 한강맨션 재건축과 한남2구역 재개발, 동작구 노량진1구역 재개발 등 지역을 대표할 만한 곳이 많았다.

 

선도 브랜드인 ‘래미안’을 보유한 삼성물산의 참전을 바라던 조합원들의 기대감도 컸다. 여러 시공사가 경쟁하게 되면 조합이 더 유리한 조건으로 건설사와 계약할 수 있다. 게다가 시공사 선정 이벤트 자체가 흥행하면서 재건축 또는 재개발 단지가 입소문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삼성물산은 입찰제안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입찰조건이 맞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가 있었지만 일부 조합원들의 실망감은 컸다.이 같은 기조의 변화는 부산 시민공원 촉진2-1재개발 시공권 입찰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삼성물산은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을 상대로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패했다. 그 후에도 서울 용산 소재 남영 업무지구 2구역(남영2구역)에서 HDC현대산업개발과 맞붙었다.

 

결과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입찰 자격을 박탈당하면서 남영2구역에 입성했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합에선 양사 모두 입찰지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최초의 시공권 입찰을 무효화한 바 있다.

 

11월 18일 입찰 마감한 한남4구역에서도 7월부터 조합 이사회를 통과한 입찰지침을 두고 현대건설과 신경전을 벌였다. 삼성물산은 당시 입찰지침에 포함된 책임준공 확약 조건 완화 등을 요청했다. 사내 사업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운 과도한 조건이라는 취지였다. 현대건설은 “삼성물산이 조합 내부 문서에 접근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며 반발했다. 결국 대의원 회의를 거쳐 해당 조건이 입찰지침에서 빠지면서 이변 없이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입찰제안서를 제출했다. 양사 모두 입찰보증금 500억원도 납부했다.

 

한남 깃발 꽂고 압구정·성수 노려

종합시공능력평가 1위 삼성물산과 2위 현대건설 간 신경전에 건설, 부동산 업계는 주목하고 있다. 한남뉴타운 외에도 압구정 재건축, 성수전략정비구역 재개발 등 서울 한강변 핵심지역 시공권 다툼을 앞두고 주택시장에서 진정한 강자를 가릴 분수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이 한남4구역에 제안한 '래미안 글로우 힐즈 한남' 전체 조감도.
삼성물산이 한남4구역에 제안한 '래미안 글로우 힐즈 한남' 전체 조감도.

 

현대건설은 삼성물산이 재건축, 재개발 시장을 떠난 사이 주택시장에서 가장 가파르게 성장한 회사다. 현대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를 발판 삼아 지난 부동산 상승기에 각각 강남, 강북 최대어인 반포1·2·4주구, 한남3구역을 수주한 데 이어 매년 정비사업 수주액 1위를 기록했다. 윤영준 사장에 이어 신임 대표이사로 내정된 이한우 부사장도 주택사업본부장을 맡은 바 있다. 삼성물산 입장에서는 이번에 현대건설을 꺾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한남2구역을 대우건설, 한남3구역을 현대건설, 한남5구역을 DL이앤씨 등 주요 1군 건설사가 차지한 가운데 재개발 구역에서 해제된 한남1구역 외에 남은 한남뉴타운 구역은 4구역뿐이다. 한남4구역은 일반분양이 많아 한남뉴타운 내에서도 사업성이 높은 곳으로 꼽힌다. 3.3㎡당 예정공사비도 940만원으로 책정했다. 한강변 브랜드 홍보 효과와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

 

삼성물산은 이번 한남4구역 입찰에 참여하면서 단지명 ‘래미안 글로우 힐즈 한남’과 함께 글로벌 설계사 ‘유엔스튜디오(UN Studio)’와 협업해 나선형 주동 디자인을 제안했다.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에 제안한 '디에이치 한강' 조감도.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에 제안한 '디에이치 한강' 조감도.

현대건설은 옆단지가 될 한남3구역과 함께 ‘디에이치 브랜드 타운’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단지명 ‘디에이치 한강’과 함께 건축 설계 업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이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이너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 건축사무소와 손잡고 스카이브리지가 돋보이는 곡선형 설계를 제안했다. 양사 모두 랜드마크급 설계와 조합원 100% 한강 조망을 내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넉넉한 지갑반도체 대신 주택사업에 기대

삼성물산이 이처럼 주택시장에서 적극적인 수주 의지를 밝히게 된 것에 대해서는 많은 해석이 나온다. 내년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압구정3구역과 성수전략정비구역 4지구 수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성수4지구는 성수전략정비구역에서 공사면적이 40만㎡로 가장 넓고 77층 초고층 설계를 계획 중이다. 압구정3구역도 총 5개 구역으로 나뉜 압구정 재건축 구역 중에서 가장 사업 규모가 크다. 다만 대지권을 둘러싼 조합원 간 갈등 문제로 시공사 선정 절차는 더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삼성물산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기자간담회를 통해 미래 주거기술 ‘넥스트 홈’과 홈플랫폼 서비스 ‘홈닉’ 등을 공개하며 야심을 드러냈다. 특히 ‘넥스트 홈’은 국내 아파트에 흔한 벽식 구조 대신 기둥식 구조를 바탕으로 입주민이 가변형 구조를 통해 원하는 평면을 채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삼성물산은 여의도, 압구정, 성수 등 초고층 설계가 가능한 재건축 단지에 넥스트 홈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번 한남4구역 입찰에 참여하면서 넥스트 홈을 초고층이 아닌 한남4구역에도 적용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핵심지 외에 수도권이나 지방 광역시에서도 공격적인 수주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정부와 중앙 정치권에서 도심개발을 위해 재건축, 재개발 규제를 풀면서 최소 2~3년간 관련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물산뿐 아니라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등 주요 건설사들이 분당신도시에서 진행되는 통합재건축 설명회에 참여하기도 했다. 분당신도시를 비롯한 경기도 1기 신도시에선 ‘노후계획도시 특별법’ 제정 이후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다.경쟁사 대비 자금운용 여유도 많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지난 몇 년간 공격적으로 주택 또는 비주택 건축 사업을 수주했던 건설사들이 다 PF(프로젝트파이낸싱)에 물려 있거나 자금 여유가 없는데 비해 삼성물산은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다”며 “그동안 이런저런 사정으로 수주를 많이 하지 못했던 건설사 입장에선 오히려 기회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근본적인 원인이 스마트폰, PC 수요 감소 등으로 인한 메모리 반도체 불황 지속에 있다는 분석을 제기하기도 한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자사 실적 유지를 위해 그룹사 외에 다른 발주처를 찾게 됐다는 것이다. 다른 건설업계 관계자는반도체 공사가 줄면서 주택공사나 건축 일반적인 건설업 수주를 늘리려 하는 아니겠나라며통상 반도체 시설 투자가 줄면 건설사로서 본연의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이 그동안 삼성물산의 패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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