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 펀드 대상 기업 수 증가 추세
“주주제안 가결율 낮지만 긍정적 영향”
자사주매입·소각 등 적극적 주주환원 요구
기업들의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도 주목된다. 최근 정부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주식의 주가부양책 시행을 예고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 명분도 더해졌다. 이에 따라 기업을 상대로 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환원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행동주의 펀드, 조준 기업 수 늘어
14일 신영증권에 따르면 국내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대상이 된 기업 수는 2018년~2020년 10곳 내외였으나, 2021년 20곳이 넘은 뒤 2022년에는 50곳에 육박하는 등 증가 추세다. 행동주의 펀드란 단순 지분투자를 넘어 주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영항력을 행사하는 펀드를 뜻한다.
박소연‧강기훈 신영증권 연구원은 “과거 국내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는 외국계 헤지펀드가 중심이었지만 2018년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으로 국내 행동주의 펀드 활동이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경영 참여 목적의 사모펀드가 투자대상 기업 주식을 10% 이상 취득해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는 의무가 사라지면서 국내 시장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이 강화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특히 2022년 이후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지배구조 개선·주주가치 제고 등을 요구하는 국내 행동주의펀드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은 상법상 주주총회가 열리는 날로부터 6주 전까지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 대부분 기업이 3월경 주주총회를 여는 만큼, 주주총회까지 남은 기간 행동주의 펀드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올해는 정부 또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가동하며 적극적인 주주환원을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행동주의 펀드의 목소리에 힘을 더하는 요소다.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2024 정기주주총회 시즌 프리뷰’ 보고서에서 다양한 국내외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활동을 전개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올해 행동주의 캠페인은 ‘주주환원을 위한 자사주 매입 후 소각’과 ‘이사회 내 독립성 및 다양성 강화’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 주주제안 가결율 자체는 낮은 수준이나, 이를 통해 기업이 지배구조 취약점을 스스로 개선하도록 만드는 등 기업가치 제고를 이끌어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은행‧화학‧물산 등 다양한 기업 대상
최근 진행 중인 행동주의 펀드의 활동을 살펴보면 얼라인파트너스의 ‘은행주 캠페인’이 대표적이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올해 1월 상장 금융지주 7곳을 대상으로 주주환원율이 저조하다고 지적하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을 통한 주주환원책을 요구했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지난해부터 이같은 은행주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이번 캠페인에서 얼라인파트너스는 국내 은행주가 선진국 은행 수준인 최소 50%의 정상적 주주환원율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금융가의 지배구조 및 이사회 구성 개선 등을 요구했다.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지난 6일 우리금융의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도 등장해 주주환원에 대한 질문공세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 대표는 당시 우리금융의 위험가중자산(RWA) 관리와 보통주자본비율(CET1)에 대해 질의했다. RWA가 증가하면 CET1 하락 압력이 커진다.
또한 이 대표는 “CET1이 13%가 돼야 정상적인 주주환원율을 약 50%로 조정할 수 있어, 13%가 언제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우리금융은 “2024년도에도 적극적으로 위험자산 관리를 해서 안정적으로 CET1 수치 12% 이상을 달성토록 하겠다”고 답변했다.
VIP자산운용은 최근 삼양그룹 계열사인 삼양패키징을 상대로 자사주매입 및 소각 등을 포함한 중기 주주환원계획 발표를 요구했다. 삼양패키징은 삼양그룹의 계열사로 국내 최초로 페트병을 생산한 회사다.
VIP자산운용은 지난 1월 9일 삼양패키징의 지분을 기존 5.17%에서 5.83%로 늘리고 지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한다는 공시를 냈다. 또한 VIP자산운용은 보유목적 항목에 장문의 글을 올리며 지분확대 및 투자목적 변경의 배경을 설명했다.
VIP자산운용은 “회사의 주주로서 경영참가의 목적은 없으나 주주환원책 수립 등에 대해 좀 더 적극적인 주주활동을 수행하고자 보유목적을 일반투자목적으로 변경하고자 한다”며 “가급적 상세하게 중기 주주환원 정책을 발표하여 투자자들의 예측가능성을 높이고, 현재처럼 저평가가 심한 상황에서 현금배당보다 적극적인 자사주매입·소각을 권유한다”고 밝혔다.
국내외 헤지펀드가 함께 주주환원을 요구한 사례도 있다. 지난 2일 씨티오브런던인베스트매니지먼트(CLIM)·화이트박스어드바이저스·안다자산운용은 삼성물산에 주주제안서를 제출했다. 이들 펀드는 삼성물산 지분 1% 안팎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모기업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주가는 순자산가치(NAV) 대비 65%가량 낮은 가격에 거래되며 저평가 상태다.
국내외 투자자 연합이 삼성물산에 보낸 제안서의 주된 내용은 배당금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을 실시하라는 것이다. 투자자 연합은 “삼성물산의 자사주 전체 소각을 지지하지만, 추가 자사주 매입이 동반되지 않아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저평가를 해소할 방안으로 먼저 보통주 1주당 4500원,우선주 1주당 4550원 등 배당 확대를 제안했다. 이와 더불어 5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역할 확대에 따라 보완책 마련도 함께 진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주주행동주의의 긍정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서 향후 추가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소액주주 및 일반투자자들이 주주제안 및 주주서한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공시체계를 정비하며,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에 관한 주주환원정책도 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주주행동주의펀드들이 기관투자자들의 협력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는 노력도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