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가 세계 선진국 가운데 독보적인 성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2025년에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민 등으로 젊은 인구가 지속해서 유입되고 노동 유연성에 따른 활발한 구조조정이 원동력으로 분석된다. 인공지능(AI)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도 미국의 성장을 돕고 있다. 다만 약 36조 달러 규모의 정부 부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미국 GDP, 2024년 2.8% 증가
미국 자산관리사인 리버프런트인베스트먼트그룹에 따르면 미국의 2023년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을 100으로 봤을 때 111.1을 기록했다. 반면 프랑스와 영국은 102.1, 일본은 100.5, 독일은 100.4에 그쳤다. 국제통화기금(IMF)이 2024년 10월 발표한 2024년 각국 경제성장률 전망치에 따르면 미국은 2.8%로 캐나다 1.3%, 독일 0%, 영국 1.1%, 프랑스 1.1%보다 월등히 높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는 미국 경제가 성장세를 유지하는 요인으로 안정적인 인구구조를 꼽았다. 유엔에 따르면 미국의 인구증가율은 2022년 0.4%, 2023년 0.6%, 2024년 0.6%이다. 현재 미국 인구는 약 3억4500만 명이다.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유럽 및 일본과는 대조된다.
미국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중은 2020~2024년 평균 65.2%로 유럽(64.6%) 및 일본(58.8%)을 앞선다. 생산가능인구란 한 국가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한 연령대의 인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경제활동참가율이나 실업률 같은 경제지표를 분석할 때 중요한 기준으로 사용된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이민 및 난민 인구 유입이 늘어난 것도 미국 내 노동인구 증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성도 월등히 높아
경기침체 지표인 ‘삼의 법칙’을 고안한 클라우디아 삼 박사는 미국 경제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로 매월 대규모로 설립되는 스타트업을 꼽았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월별 창업 신청 건수는 팬데믹 이전 30만 건 이하였지만 팬데믹 직후 50만 건 가까이 늘었다. 최근에도 40만 건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미국의 유연한 노동시장은 노동생산성을 높여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또 다른 주요 요인이다. 삼 박사는 “유럽과 달리 해고와 고용이 유연한 미국 노동시장 특성에 따라 이른바 ‘대퇴사 시대’에 많은 근로자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일자리로 옮길 기회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대퇴사 시대란 2021~2022년 근로 여건이나 급여가 더 좋은 새 직장으로 옮기기 위해 기존 직장에 사표를 내는 이들이 많던 시기를 뜻한다.
미국의 유명 경제 분석가이자 데이터 저널리스트인 조지프 폴리타노는 각 선진국의 노동생산성을 2015년 100으로 잡았을 때 2024년 어느 수준까지 올라왔는지 분석했다. 그의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노동생산성은 2024년 3분기 115 인근까지 올랐지만 영국은 107 인근이었고 프랑스는 100을 겨우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최근 빠르게 도입되고 있는 AI 기술 또한 미국의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의 AI에 대한 민간투자는 2017년 이후 급증했다. 투자 규모가 감소했던 여타 주요국과 달리 2023년에도 전년 대비 22.1% 증가하며 670억 달러를 기록했다.
IB들 “Fed 금리인하 폭 축소될 것”
하지만 미국의 강한 경제는 오히려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강한 성장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기면서 미국 중앙은행(Fed)이 2025년 금리인하 폭을 축소할 가능성이 커서다.Fed는 2024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경제전망예측(SEP)을 통해 2025년 미국 경제가 기존 예상보다 훨씬 강할 것으로 예측했다. Fed가 전망한 2025년 미국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24년 9월 2%였지만 12월에는 2.1%로 상향됐다.
인플레이션은 2025년 말 기준 2.5%로 전망했다. 2024년 9월 2.1%에서 0.4%포인트 높였다. 2025년 실업률은 2024년 9월 FOMC 때보다 0.1%포인트 낮은 4.3%로 내다봤다.
Fed는 2025년 말 기준금리(중간값)를 기존 2024년 9월 전망치(연 3.4%)보다 0.5%포인트 높은 연 3.9%로 제시했다. 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내린다는 전제로 2024년 9월 기준으로는 2025년에 네 차례 인하가 예상됐으나 이번에는 두 차례로 줄어들 것으로 관측했다. Fed는 2026년 말 기준금리는 연 3.4%(9월 2.9%), 2027년 말은 연 3.1%(9월 2.9%)로 전망해 9월보다 상향했다.
뉴욕 월가 투자은행(IB)들도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정책 등을 반영해 기존에 전망했던 내년 금리인하 폭을 축소하고 있다고 예상한다. 관세 인상으로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 인플레이션을 다시 부추길 수 있다고 봐서다.주요 10개 IB 중 바클레이즈,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건스탠리 등은 2025년 Fed가 금리를 0.5%포인트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Fed가 2024년 12월 경제전망요약(SEP)에서 제시한 것과 같다. 도이체방크는 2025년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노 컷(no cut)’ 시나리오를 내놨다. 골드만삭스와 JP모간, 웰스파고는 0.75%포인트 인하, 씨티그룹은 1.25%포인트 인하를 전망했다. 캐나다에 본사를 둔 TD뱅크는 1%포인트 인하를 예상했다.
관세가 인플레 부추기나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부과도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면서 미국 내 물가도 함께 상승할 수 있어서다.
트럼프 당선인은 2024년 12월 16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훌륭한 거래를 성사시킬 것이다. (관세 협상과 관련한) 모든 카드는 우리에게 있다”고 말했다. 중국 등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을 밝힌 가운데 협상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중국과 추가 무역 협상이 있을 것으로 보느냐는 언론 질문에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가 “트럼프 당선인은 관세에 대해 분명한 어젠다가 있으며 상호주의가 핵심 토픽”이라고 답변하자 트럼프 당선인은 곧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그는 “그들(다른 나라)이 우리에게 세금(관세)을 매기면 우리도 같은 금액을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거의 모든 경우 그들은 우리에게 세금을 매기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고율 관세 부과 시 인플레이션 심화 우려 등을 묻자 “관세는 미국을 부유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집권 1기 때 철강 관세를 부과한 것을 언급한 뒤 “만약 내가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5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덤핑을 계속했을 것”이라며 “나는 관세를 부과했고 그것을 멈췄을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막대한 수입을 얻었다”고 주장했다.
미 연방정부 부채도 리스크
부채한도에 거의 도달한 미국 정부 부채도 우려 사항이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2024년 12월 27일(현지 시간) 의회에 서한을 보내 부채한도 도달 방지를 위해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옐런 장관은 서한에서 “재무부는 2025년 1월 14일부터 23일 사이에 한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하며 그 시점에는 재무부가 특단의 조치를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옐런 장관이 서한을 통해 부채한도 관련한 조치를 촉구한 만큼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으로 시작될 새 행정부는 취임식 이후 곧바로 부채한도 협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한도는 미국 정부가 차입할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제한하기 위해 의회가 설정한 규모다.
현재 연방 부채는 약 36조 달러에 이른다. 부채한도에 도달하면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새로 돈을 빌릴 수 없다. 기존의 현금 자산과 특별 회계 조치와 같은 특단의 조치 등을 통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게 된다.
만약 정부의 특별 조치 수단이 고갈될 것으로 전망되는 이른바 ‘엑스 데이트(X date)’까지 의회가 부채한도를 상향하거나 유예·폐지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는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지게 된다. 보수 싱크탱크인 경제정책혁신센터는 올 6월 중순을 엑스 데이트로 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디폴트에 빠지면 국방, 공공안전, 의료서비스 등 주요 정부 기능이 중단되거나 축소될 수 있다. 공무원·군인 연금 수급자 등이 급여나 혜택을 못 받게 된다. 미국 정부와 계약을 맺은 기업과 기관들이 대금을 제때 받지 못할 수도 있다.재무부는 2024년 1월에도 부채한도 도달로 특별 조치 시행에 들어갔다. 미국 여야는 같은 해 6월 정부 지출을 제한하는 대신 31조 4000억 달러 수준의 부채한도 적용을 2025년 1월 1일까지 유예하기로 합의하면서 디폴트 위기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