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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환율

 

원·달러 환율이 1년 새 200원 가까이 뛰어올랐다. 환율의 고공행진이 이어지며 금융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비상대응체계를 가동 중이다. 2025년 환율 상단이 1400원대 후반 또는 1500원대로 오르는 시나리오까지 검토하고 있다. 

 

고환율이 계속되고 대외 신인도가 떨어지면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다. 환율상승은 금융권의 자산 건전성과 외화 유동성에 타격을 준다. 리스크 관리를 위해 은행이 가계·기업의 대출을 옥죄면서 금융시스템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환율상승→건전성 지표 비상

2024년 마지막 외환시장 거래일(12월 30일) 환율은 1472.5원(주간 거래 기준)에 장을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2년 레고랜드 사태 및 미국발 고금리 충격 등 세 차례뿐으로 이번이 네 번째다.

 

금융권은 비상등이 켜졌다. 1300원대로 예측했던 환율이 1500원대를 넘보면서 건전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장의 예상보다 환율상승 속도가 더 가파르면 외화 위험자산이 늘면서 위험가중자산(RWA)이 증가해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이어진다. 손실흡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BIS 자기자본비율은 자기자본을 RWA으로 나눠 계산한다. RWA는 위험 수준을 감안해 금융회사 자산을 재평가한 수치다. 주택담보대출처럼 회수 가능성이 높은 대출은 위험 정도를 낮게, 저신용 기업에 준 대출은 위험 가중치를 높게 재산정하는 식이다. 

 

국내 일반은행의 전체 RWA 중 외화 RWA 비중은 22.6%(2024년 9월 말 기준) 정도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1년 3분기~2022년 3분기 환율상승 및 외화 위험자산 증가 요인이 국내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을 1.35%포인트 하락시켰다. 환율이 100원 상승하면 국내 은행의 BIS 자기자본비율은 0.32%포인트 감소했다. 

 

환율 10원 오르면 위험액 2조 급증

RWA의 증가는 보통주자본(CET1) 비율에도 영향을 준다. CET1은 BIS 자기자본비율 중 하나다. 총자본에서 보통주로 조달되는 자본의 비율을 뜻한다. 이 비율은 금융사 재무건전성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수치가 높을수록 주주 배당 여력도 높다고 여겨진다. 주요 금융지주들은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밸류업 정책에 맞춰 CET1 비율 관리에 촉각을 기울여왔다. 목표치(11.5~13% 이상) 이상의 자본을 주주환원의 재원으로 쓴다고 약속했다.

 

금융당국에선 금융지주회사들에 CET1 13% 이상을 유지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주주환원 약속과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으로 2024년 3분기 4대 금융지주의 CET1은 △KB금융지주 13.85% △신한금융지주 13.13% △하나금융지주 13.17% △우리금융지주 11.96%로 집계됐다. 문제는 고환율에 따른 CET1 하락이다. ‘환율상승→외화 위험자산 증가→RWA 증가→CET1 하락’으로 이어진다. 환율 불안전성으로 CET1이 다시 12%대로 내려갈 경우 적극적인 주주환원에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다만 은행마다 자산 구성이나 전략에 따라 차이가 있어 CET1의 하락폭도 다르다. KB와 신한금융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KB와 신한은 CET1이 13%를 상회하고 있는 만큼 환율이 다소 오르더라도 감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며 “각사가 2025년 사업계획을 세울 때 기준금리 인하폭을 크게 가정해 영업이익도 조정했다. 보통 금리 레벨과 은행의 핵심 수익원인 순이자 마진은 비례하기 때문인데 (FOMC 메시지를 보면) 생각보다 금리가 안 내려갈 것 같아 이 부분이 수익으로 연결되고 CET1이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금융은 이미 CET1이 가장 낮은 데다 외화부채 규모도 꽤 돼 하락폭이 가장 클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어 “하나금융도 해외 사업이 많아 고환율이 계속되면 CET1 비율의 하락폭이 상대적으로 클 수 있으나 외환은행을 인수한 만큼 위험 대응 방법을 다양하게 알고 있어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환율이 10원 오를 때 4대 금융지주의 RWA는 1조8800억원(2024년 3분기 기준) 많아지는 것으로 분석된다. KB·하나금융이 5000억원, 우리금융이 4000억~5000억원 늘고 신한금융이 3800억원 정도 위험치가 증가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CET1 비율은 0.6~3bp(1bp=0.01%포인트) 내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사 위험자산 증가액
금융사 위험자산 증가액

단기 유동성 유의

단기 유동성 관리도 중요한 문제다. 장기적으로 달러 강세가 가속화될 경우 유동성 지표인 외화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악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외화 LCR은 앞으로 30일간 은행이 순외화 유출 대비 쌓아둬야 하는 고유동성 자산(달러·미국 국채 등)의 비율이다. 환율이 오르면 은행의 평가손실을 메꾸는 데 보유 국채 등 유동성 높은 자산이 주로 활용되고 외화예금이 감소(차익실현)하는 등의 경로로 LCR이 줄어든다. 

 

금융당국은 은행 LCR을 97.5%로 규제하고 있다. 예컨대 LCR 비율이 90%라면 30일 동안 순유출 외화 예상액을 10억 달러로 가정했을 때 9억 달러 이상은 갖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정부가 이 비율을 하향 조정해 완화하게 되면 은행 입장에서는 달러 확보에 대한 압박이 줄어든다. 주요 시중은행 LCR은 115~163%로 양호하지만 향후 환율 향방에 따라 LCR도 급락할 수 있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정부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해 낮췄던 LCR 규제비율을 2025년 1월 1일부터 100%로 정상화하기로 했지만 대내외적 상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달러값이 고공행진하며 은행 간 초단기로 외화를 빌리는 콜머니도 부쩍 늘었다. 달러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기업들이 미리 외화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분주해지면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2024년 3분기 콜머니 평균 잔액은 4조8000억원으로 2023년 말(4조3000억원)보다 5000억원 늘었다(금융감독원). 콜머니 등 단기 자금은 환율 변동에 따라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속성이 있어 유동성 지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은행은 “단기적 자금 수요와 환율 급등이 맞물릴 경우 일부 금융기관들이 유동성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에 주의해야 한다”며 “환율 급등 시 자금 수요가 단기에 집중되지 않도록 외환 스와프 만기 장기화를 유도하는 등의 정책적 노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고환율, 은행 재무 영향 제한적

변수가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시장에선 국내 은행들의 관리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은 “원·달러 환율이 높은 수준을 지속하면서 각종 규제비율이 하락하더라도 금융기관의 외화 LCR이나 BIS 자본비율이 양호해 금융안정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한국은행의 ‘2024년 제22차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한국은행은 “2024년 9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외화자산은 외화부채를 103억 달러 상회해 오히려 환율상승 시 환평가익이 발생하는 구조”라며 환율상승이 국내 금융기관의 재무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2024년 3분기 외화 RWA 비중(22.6%)도 2022년 3분기(26.2%)보다 낮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도 “이미 금융권에서 선물환이나 통화스와프, 외화자산과 외화부채 만기 일치 등 다양한 헤지(위험회피) 전략을 통해 부채 항목에 환율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리스크를 줄이고 있다”며 “현재 같은 체력에선 금융권의 건전성이 위험 수준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거 외환위기 때와 달리 정부도 단기 외화부채 비중이 적고 순외화 자산은 많은 상태”라며 “위기가 생기면 언제든지 지원해줄 수 있는 여력이 있다”고 부연했다.

5대 은행 달러예금 잔액 추이

취약계층 대출 감소,

금융시스템 붕괴 우려

오히려 전문가들은 달러값 상승으로 대출 자산의 질적 하락을 우려했다. 환율이 뛰면 수입기업뿐 아니라 원자재를 수입해오는 수출기업에도 부담이다. 원화로 환산되는 기업의 외화 빚이 빠르게 불어나면 원금·이자 상환에 제동이 걸린다. 

 

거래 기업들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은행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 2024년 10월 말 중소기업대출 연체율은 0.70%로 전년 동월 말(0.55%) 대비 0.15%포인트 상승했다. 

 

은행권은 건전성 관리를 위해 여신을 줄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전체 기업대출 잔액(2024년 12월 26일 기준)은 825조398억원으로 한 달 새 4조원 넘게 감소했다. 통상 연말에는 기업들이 재무제표 관리를 위해 대출 상환을 늘리거나 은행들이 신규 대출을 연초로 미루는 등의 관행이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감소폭이 확대됐다.문제는 높아진 대출 장벽으로 취약계층 대출이 선제적으로 줄어들어 양극화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외화 빚 비중이 높고 신용도가 취약한 중소기업은 물론 소상공인이 휘청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효섭 실장은 “당국의 대출 페널티와 CET1 등 관리로 은행이 신규 대출을 관리하고 있다. 대출받기 힘든 분들이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그는 외환시장의 위기가 심각하다고 진단하며 시급히 고환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율이 1500원 수준으로 지속되면 금융 시스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선진국과의 통화스와프를 더 확대하고 기획재정부의 외국환보유고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한편 가계나 기업의 해외 투자에 대한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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