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석유왕’ 미국 존 D 록펠러 스탠더드오일 창업자가 세계 첫 억만장자에 이름을 올렸다. 111년이 흐른 2027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인류 최초의 조만장자에 등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현재 머스크의 재산은 4421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조만장자는 재산이 1조 달러가 넘는 부호를, 백만장자는 100만 달러를, 억만장자는 10억 달러 이상을 가진 부자를 말한다.
한국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84억 6000만 달러)과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71억6000만 달러) 등이 있다. 블룸버그통신이 발표한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이들은 각각 331위, 408위다.부자들의 삶은 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대중들의 수요를 채워주기 위해 영화나 TV, 드라마 등에선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매년 적잖은 보고서와 가십성 보도 등이 쏟아진다.
대내외 보고서들을 종합해 세계 부자와 한국 부자의 수, 지역별 부집중도, 여성과 남성의 종사업종, 라이프스타일 등을 정리해봤다.
전 세계 부자
가장 많은 미국 부자, 치고 올라오는 인도 부자
2023년 전 세계 부자 수가 증가했다. 시장은 인공지능(AI)에 열광했고 주요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에 대한 전망은 연말에 글로벌 주식 시장과 포트폴리오 수익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부의 피라미드의 맨 위에 있는 억만장자들의 총 순자산은 12조1000억 달러가 됐다. 글로벌 부자들은 2023년 16만1280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미국에서만 38%가 살고 있다. 미국 부자들의 총 순자산은 전년 대비 11.7% 증가해 18조6000억 달러를 기록했다.
억만장자 수도 가장 많다. 1111명이다. 전 세계 억만장자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194억1000만 달러), 마크 저커버그 메타 플랫폼스 CEO(174억9000만 달러),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144억 5000만 달러),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136억7000만 달러) 등이 대표적인 미국의 억만장자로 꼽힌다.
글로벌 인력정보업체 알트라타는 “견조한 소비 지출, 미국 경제의 전반적인 회복력, 매그니피센트7을 비롯한 미국 대형 기술주의 수익이 부자들의 부를 증대시켰다”고 분석했다(‘2024 세계 초고액 자산가 보고서’와 ‘억만장자 인구조사 2024’).
유럽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독일이다. 세계 3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공급 충격 등으로 독일 경제는 매우 부진했지만 부자는 흥했다.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유럽 지수는 상승세를 보였는데 북미와 마찬가지로 인플레이션 하락과 향후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 낙관론이 높아지면서 주식시장 랠리가 촉진됐다. 낮은 에너지 비용으로 인한 무역 조건이 개선됐고 혁신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회복이 뒷받침됐다. 반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자가 많은 중국은 이들의 수가 2년 연속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억만장자 수도 미국과 3배 이상 차이난다. 경기침체와 부동산 침체 심화, 국내 부채 증가 등이 악영향을 줬다. 알트라타는 “중국 정부의 통제 강화로 인해 초부유층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인재 유입이 감소했으며 상대적으로 낮은 중국 관련 자산의 수익률로 인해 자산 포트폴리오가 제한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모습은 일본과 인도 등 아시아의 다른 주요 부유층 시장에서 부자 수가 성장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도는 2023년 모든 주요 국가 중 억만장자 수가 가장 크게 확대(16%)돼 131명으로 조사됐다. 알트라타는 “일본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 정책 입장은 국내 자산과 소비자 지출에 순풍으로 남아 있다”며 “인도는 인프라 개발, 자본 유입 및 회복성 있는 수요가 부의 창출을 지원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경제 중 하나라는 지위를 유지했다”고 분석했다.이어 “3개 지역이 국가 상위 순위를 장악하고 있지만 구성은 점차 바뀔 것으로 보인다”며 “인도의 부자 수가 독일을 곧 앞지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 부자 텍사스로 이동
고급 비즈니스, 문화 및 라이프스타일 기회에 따라 부자들이 선호하는 도시가 있다. 알트라타는 부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 10곳을 뽑았다. 뉴욕, 홍콩, 로스앤젤레스, 도쿄, 샌프란시스코, 런던, 시카고, 파리, 워싱턴DC, 댈러스 등이다. 상위 10개 도시 중 6곳이 미국인 셈이다. 뉴욕과 홍콩 두 도시의 부자 수는 그다음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한 도시인 로스앤젤레스와 도쿄보다 훨씬 많았다. 세계에서 부자가 많은 중국과 독일은 상위 10개 도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23년 억만장자의 28%가 상위 15개 도시에 거주했다. 총 928명이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도시에 가장 많이 거주했다. 반면 중국 베이징, 선전, 항저우와 홍콩 등에선 억만장자 수가 감소했다.
알트라타는 “홍콩은 최근 몇 년 동안의 정치적 탄압과 중국 본토 정부의 통제 강화로 인해 부자들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미국에서는 일부 기업과 부자들이 전통적인 부의 허브에서 텍사스와 플로리다의 도시로 이전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세금을 덜 내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분석했다.
실제 머스크가 이끄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2021년 실리콘밸리를 떠나 텍사스 오스틴으로 본사를 이전했다. 머스크가 오랜 기간 테슬라의 성장 기반이 돼 온 이 곳을 떠나 텍사스 오스틴으로 근거지를 옮긴 것은 캘리포니아의 높은 세율과 집값, 강한 방역 규제 등에 대한 불만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머스크는 또 자신의 거주지 역시 캘리포니아에서 주 소득세가 없는 텍사스로 옮겼음을 밝힌 바 있다.
여자는 상속 부자 많고 남자는 자수성가 비율 높아
2023년 전 세계 억만장자 3323명 중 431명이 여성으로 조사됐다. 12.9%다. 점유율은 낮지만 여성 부자들은 지난 10년간 꾸준히 증가했다. 대부분 부를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다. 프랑수아즈 베탕쿠르 마이어스 로레알 상속자, 월마트 창업자 가문의 일원인 앨리스 월튼 등이다. 3분의 1은 상속과 자신만의 사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4분의 1은 스스로 재산을 불렸다. 5년 전(16%)보다 증가한 수치지만 여전히 남성 자수성가(66%) 비율에 비해 크게 뒤처져 있다.
5명의 억만장자 여성 중 1명꼴로 비영리 및 사회단체에 집중했다. “부의 원천이 상속 재산이기 때문”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남성 억만장자가 비영리 및 사회단체에 종사하는 경우는 5%에 불과했다. 남성의 주요 산업으로는 은행 및 금융이 22.7%로 1위를 기록했고 대기업 운영(9.4%)과 부동산(7.2%)이 뒤를 이었다.
여성 부자가 상속에 의존할 경우 억만장자로 등극하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전적으로 상속 재산을 소유한 여성 억만장자 그룹 중 약 절반이 70세가 넘었다. 6명 중 1명이 50세 미만이었다. 자수성가한 억만장자 여성 대부분은 50~70세 연령대에 속했고 10명 중 1명만이 50세 미만으로 조사됐다.
한국 부자
서울 사는 300억 부자들 늘었다
“강남 30평대 아파트 소유하고 고급 외제 승용차 타면 부자일까요?”
과거 한국에선 벼농사 1만 석을 거둬들이면 부자로 봤다. 이들을 만석꾼이라고 불렀다. 현재 부자를 판별하는 기준은 화폐 단위로 바뀌었다. 금융사들의 경우 대체로 금융 자산 10억원 이상을 부자의 기준으로 보고 있다.
2024 한국 부자 보고서(KB경영연구소)는 한국 부자를 ‘금융자산 10억원(1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개인’으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 ‘금융자산 10억∼100억원 미만’인 부자를 ‘자산가’, ‘100억∼300억원 미만’인 부자를 ‘고자산가’, ‘300억원 이상’인 부자를 ‘초고자산가’로 구분했다.
다만 보고서는 정작 부자들은 ‘총자산 기준 100억원’ 이상은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언급했다. 부자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인 셈이다.
100억원 이상 부자들은 3만9200명으로 조사됐다. 초고자산가는 1만 명이 넘었다. 8600명(2023년)에서 1500명 늘었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자산도 덩달아 증가했다. 전년 대비 139조원이 늘어 한국 부자의 금융자산 중 44.8%를 차지했다.반면 고자산가는 1년 새 2600명이 감소해 2만9100명으로 집계됐다. KB경영연구소는 “일부는 주식 가치 상승 등으로 초고자산가 그룹으로, 일부는 부동산 저점 매수 등으로 유동성이 줄고 금융자산이 감소해 자산가 그룹으로 재분류됐다”고 분석했다.
2024년 한국 부자 70.4%가 수도권에 거주했다. 전년 대비 이 지역에서 2400명이 증가했다. 서울이 20만9000명으로 부의 집중도가 가장 높았고 경기(10만2000명), 인천(1만4000명)으로 조사됐다. 서울 내에서는 강남·서초·종로·용산 지역이 두드러졌다. 그다음으로 부산(2만9000명), 대구(1만9000명) 등 경상도 지역에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사업하고 부동산 투자로 돈 버는 부자들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던 주된 원천으로는 ‘사업소득’(32.8%)과 ‘부동산 투자’(26.3%)가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근로소득(8.5%)과 상속·증여(18.3%)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다.
다만 한국 부자들 중 약 60.8%가 상속 또는 증여를 받은 경험이 있고 54.3%는 앞으로도 상속·증여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상속이나 증여로 물려받는 자산은 ‘현금·예적금’(53.9%), ‘거주용 부동산’(44.0%), ‘거주용 외 부동산’(35.4%), ‘금이나 보석 등 현물자산’(22.6%) 등이었다.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밑천이 되는 ‘종잣돈’의 규모는 일률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고 개인이나 가구의 자산이나 소득 수준, 투자 행동, 지출 행동 등 여건에 따라 인식이 다르지만 평균 ‘7억4000만원’을 종잣돈으로 생각했다. 종잣돈을 만든 시기는 평균 42세였다. 10억원 이상의 종잣돈은 45세에 만들었다고 응답한 부자들이 많았다.한국인 100명 중 2.5명은 이미 백만장자다. 한국인 백만장자 수는 129만5674명으로 5년 후인 2028년에는 164만3799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스위스 은행 UBS의 ‘2024 세계의 부 보고서’).
돋보기
부자의 루틴은?
일찍 자고 일어나 책 읽고 매일 가족과 식사
부자의 하루는 ‘30분’ 길다
빌 게이츠가 운영하는 블로그 ‘게이츠 노트(Gate Notes)’에는 그가 읽은 책들이 나열돼 있다. 그는 매년 약 50권의 책을 읽고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고 온라인 경제 강의(티모시 테일러의 경제학 시리즈)와 즐겨 듣는 음원 재생 목록을 함께 추천한다.
부자들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하루의 루틴’이다. 2024 하나은행 웰스리포트(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한국 부자 3명 중 1명은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하기 전 신문을 읽거나 아침 운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자의 독서량은 연 10여 권으로 집계됐다. 10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는 연 20여 권으로 조사됐다. 반면 일반 대중은 6권에 그쳤다.
부자들의 하루는 일찍 시작됐다. 평균 수면 시간은 7.3시간으로 일반 대중과 비교해 0.5시간(30분)을 덜자는 편으로 나타났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은 대략 오후 11시 30분으로 12시를 넘기지 않았다.
행복의 척도는 ‘가족 관계’
“돈이 많으면 계속 행복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이스털린의 역설’을 들 수 있다.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론이다. 요지는 행복의 수준(level)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부자 사회도 이 같은 현상이 보여지고 있다. 삶의 만족률이 정체되는 총자산은 약 50억원으로 조사됐다(2024 하나은행 웰스리포트). 총자산 50억원까지는 돈이 많을수록 삶에 만족도가 높다고 답한 사람의 수가 가파르게 늘었지만 50억원 이상 구간에서는 만족한다고 답한 사람이 오히려 감소했다. 총자산이 70억원을 넘어가자 만족도가 높다고 답한 사람의 비율이 다시 크게 늘었다. 총소득 기준으로는 4억원, 총소비액은 2000만원까지 삶의 만족률이 상승하다가 이후 하락 및 정체되는 모습을 보였다. 보고서는 “삶의 만족에 경제력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돈의 규모만큼 행복이 무한정 커지는 것은 아님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부자들은 ‘삶의 만족도’를 느끼는 요소로 ‘가족 관계’를 꼽았다. 보고서는 “부자의 경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긴 것을 확인했다”며 “부자 10명 중 7명은 일주일 동안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 횟수가 ‘주 3회 이상’이라고 응답했다. 가족과 식사하는 횟수가 ‘거의 매일’이라고 응답한 비중은 40%로 절반에 가까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