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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31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어 "4년 동안의 음악 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겠다"며 작별을 고했다. 사진은 2집 '하여가'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모습.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6년 1월31일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어 "4년 동안의 음악 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겠다"며 작별을 고했다. 사진은 2집 '하여가'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 모습.

 

1996년 1월 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이 눈물의 기자회견을 열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날 '서태지와 아이들'은 "4년 동안의 음악 생활을 마감하고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겠다" "새로운 음반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작업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화려할 때 미련 없이 떠난다" 등의 말을 남긴 채 작별을 고했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 놀라운 신드롬

 

헤비메탈 그룹 시나위의 베이시스트였던 서태지는 당대 최고의 춤꾼 양현석, 이주노와 함께 3인조 그룹을 결성했다. 그렇게 '서태지와 아이들'은 1992년 3월14일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무대를 통해 데뷔했다.

 

이들은 데뷔와 동시에 TV저널 올해의 스타상, 서울가요대상 올해의 가수상과 최고 인기가수상, 골든디스크 본상, KBS 가요대상 15대 가수상, MBC 10대 가수가요제 최고 인기가요상과 신인가수상, SBS 가요대전 대상 등 휩쓸 수 있는 모든 상을 휩쓸었고 발표하는 곡마다 대박을 터뜨렸다. '난 알아요' '환상속의 그대'가 들어있는 1집은 18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기록됐다. 이어 2집 220만장, 3집 160만장, 4집 110만장이라는 음반 판매기록을 남겼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중문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 한국 가요계가 서태지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청소년과 젊은이들 사이에 대통령 이상가는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3집 앨범 '교실이데아'를 놓고 사탄 메시지설이 나돌아 TV메인뉴스, 고발 프로그램에서까지 다뤄질 정도였다. 1994년 대한민국 학계와 언론계가 뽑은 '광복 50년 한국을 바꾼 100인'에 가수로서는 최초로 선정됐다.

사진은 가수 서태지가 지난 2008년 7월31일 오후 경기도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MBC스페셜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의 일환으로 1400명의 팬들과 미니콘서트를 가지며 인사하는 모습.
사진은 가수 서태지가 지난 2008년 7월31일 오후 경기도 일산 MBC드림센터에서 'MBC스페셜 북공고 1학년 1반 25번 서태지'의 일환으로 1400명의 팬들과 미니콘서트를 가지며 인사하는 모습.


4년 만에 막 내린 '서태지 신화'

 

서태지와 아이들이 교육 현장의 문제점, 사회 부조리 등 저항적 메시지가 강한 음악을 내세울수록 대중은 더욱 열광했다. 그렇게 이들은 '문화 대통령'이 됐다. 

 

그러던 1996년 1월31일, 서태지와 아이들은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 유림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그룹 해체를 발표했다. 음악적 완성도, 사회적 이미지, 팬들의 지나친 집착 등이 서태지와 멤버들을 지치게 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선언에 팬은 물론 온 국민이 충격에 빠졌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 역을 연기한 민도희가 서태지와 아이들 은퇴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는 장면이 주요 사건으로 그려질 만큼 이들의 해체 선언은 수많은 팬이 눈물을 흘리게 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됐다.

 

K팝의 시초를 만들며 가요계의 획을 그은 서태지와 아이들은 4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시절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를 따라부르던 이들은 이제 중년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아티스트와 팬과 멋진 동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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