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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이 드디어 제도권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았다.

 

2013년부터 10년 동안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해온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1월 10일 마침내 이를 승인했다. 미국 증시에는 블랙록·피델리티 등 유명 운용사의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가 한꺼번에 상장됐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 ETF에 이틀(11~12일) 동안 순유입(매수-매도)된 금액은 무려 8억1900만달러(약 1조800억원)에 달한다. ‘출시 몇 주 안에 수억달러가 유입될 것’이라던 보수적인 예측을 크게 웃돈다.

 

하지만 ‘제도권 투자자산으로 인정받았다’는 경탄은 잠시뿐. 승인 기대감에 1년 전 대비 200% 이상 급등한 비트코인 가격은 승인 직후 10% 넘게 하락했다. 오히려 투자자 관심은 벌써 ‘다음 ETF 후보가 무엇일까’로 넘어갔다. 새 챕터를 연 크립토 시장이 상승 곡선을 탈 수 있을까. 아니면 ‘탈중앙화’를 내건 코인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그 존재 가치를 잃어갈까.

 

자금 유입 기대감…“금처럼 오를까”

 

 

재야에서 떠돌던 디지털자산(코인)이 드디어 제도권으로 편입됐다. 미국 증시에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상장지수펀드)가 한꺼번에 상장됐다. 블랙록·피델리티·아크인베스트 같은 유명 운용사가 내놓은 상품이다. 자금도 몰렸다. 상장 첫날 11개 ETF의 거래 규모는 46억달러(약 6조원)에 달했다. 이틀(1월 11~12일) 동안 순유입(매수-매도)된 금액은 8억1900만달러(약 1조800억원)였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일반 주식 계좌로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이다. 투자자는 업비트·빗썸 같은 코인 거래소를 통하거나, 디지털 지갑에 보관할 필요도 없다. 비트코인을 실제 소유하는 주체는 ETF 운용사다. 대신 비트코인 시세가 ETF 가격에 반영된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사실상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린다.

 

기관 투자자 자금 유입 불 보듯

 

가상자산 거래소 불신 해소 계기

 

제도권 편입까지 꼬박 10년 걸렸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누구인지 여전히 모르는 인물이 비트코인을 처음 발행한 게 2009년이다. 비트코인은 가상자산 시장의 효시나 다름없다. 하지만 미국 SEC는 2013년부터 이어진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을 줄줄이 거부했다. ‘사기와 시장 조작 가능성’으로 적절한 투자자 보호 장치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지난해 8월 SEC가 그레이스케일이 제기한 소송에서 패했다. 법원이 “비트코인 선물 ETF를 승인해놓고 현물 ETF 승인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판결을 내며 10년의 줄다리기가 끝났다. SEC는 “이 판결이 비트코인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현물 ETF를 거부할 명분을 잃었다.

 

비트코인 현물 ETF로 가상자산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는 데 이견은 없다. 제임스 엔젤 조지타운대 부교수는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과거 의 술처럼 비트코인은 존경할 만한 투자 공간 밖의 무법자로 여겨졌는데 이제는 올드보이 클럽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개인 투자자 입장에서 본다면 크게 달라질 게 없을 수 있다.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살 수 있는 비트코인을, 익숙한 증권사 앱을 통해 ETF로 구매한다는 정도의 차이다. 수익률 차이 역시 없다.

 

하지만 제도권 기관 투자자 입장에서는 새 시장이 열렸다. 특별한 규제 없이 비트코인을 투자 자산으로 담을 수 있어서다. 이미 스탠다드차타드는 올해 안에 500억~1000억달러 자금이 비트코인 현물 ETF로 유입될 거라는 전망을 내놨다. 미국에 등록된 투자자문사(RIA) 운용자금 중 0.1%만 비트코인 ETF로 들어와도 1120억달러가 될 것이라는 계산이다.

 

개인 투자자 참여 증가를 예상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간 법적 실체가 불분명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았다. 세계 4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는 2022년 파산했다. 1위 바이낸스는 미국에서 자금 세탁 등 유죄를 인정하고 CEO가 사임했다. 5조6000억원에 달하는 벌금도 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대형 증권사를 통한 거래 방식은 코인 지위를 높인다는 평가다. 적어도 해킹이나 사기로 고객이 구매한 비트코인이 사라져버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부 전망이지만 비트코인 ETF 출시 이후 미국 ETF 시장 규모는 첫해 약 14조달러, 두 번째와 세 번째 해에는 각각 26조달러와 39조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는 추정이 있다”며 “전망처럼 비트코인 ETF 시장이 성장한다면 전 세계 금 시가총액(13조달러)을 단번에 넘어서게 된다”고 말했다.

비트코인 가격 흐름
비트코인 가격 흐름

최초의 금 ETF는 2004년 등장

 

이후 금 5배 급등…비트코인도? 

 

제도권 편입 이후 비트코인이 어떤 길을 걸을까. 전문가들은 금이 실물 거래를 넘어 ETF 시장으로 확장됐을 때의 성장세와 비교하기도 한다. 미국에 최초의 금 ETF ‘SPDR 골드셰어즈’가 상장된 게 20년 전인 2004년이다. 금 ETF가 상장된 바로 직후에는 금값이 하락했다. 금 ETF 출시 전 몇 달 동안 20% 넘게 올랐던 금값이 ETF 상장과 동시에 떨어졌다. 최근 비트코인 ETF가 승인을 얻자마자 주가가 급락하는 흐름과 비슷하다. 당시 직전 가격을 회복하는 데 1년 가까이 걸렸다.

 

이후 만 19년 동안 금값은 5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를 토대로 ‘비트코인 현물 ETF 출시=중장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예측하기도 한다. 다만 같은 기간 S&P500은 4배 올랐다. 금값이 주가 대비 현격하게 오른 게 아니듯, 비트코인도 나 홀로 급등을 예상하기는 어렵다. 다만 ‘디지털 금’으로서 상승 곡선을 탈 것이라는 기대감은 남아 있다.

 

일부 전문가는 탈중앙화를 표방한 코인이 제도권에 편입된 것이 ‘호재’가 된, 아이러니한 상황을 언급하기도 한다. 2008년 10월 나카모토 사토시가 공개한 비트코인 백서(비트코인: P2P 전자 화폐 시스템)에는 ‘어떤 금융기관도 거치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직접 전달되는’ 전자화폐라는 비전이 담겼다. 탈중앙화와 분권화가 비트코인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등장 16년 만에 중앙화된 대형 금융사가 관리하는 금융 시스템에 편입됐다. 게리 겐슬러 SEC 의장은 “나카모토 사토시는 비트코인이 분산형 시스템이 될 거라고 말했지만 중앙화로 이어졌다”며 “이게 (비트코인 현물 ETF의) 아이러니”라고 꼬집기도 했다.

 

다음 타자는 이더리움일까

 

미 법원 ‘증권’ 해석에 달려 

 

투자자는 벌써부터 다음 ETF 후보를 찾는다. 관계자들은 ‘이더리움’이라고 예상하는 듯하다. 지난 1월 11일 4만9000달러 선에 근접했던 비트코인 가격은 승인 직후 4만2000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파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면, 이더리움 가격은 비트코인 ETF 승인 직전보다 10% 올랐다. 비트코인 현물 ETF가 나왔으니, 이제 다음 현물 ETF는 이더리움일 거라는 전망에서다.

 

기대와 달리 이더리움이 당장 ETF로 등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비트코인과 달리 누가 만들었는지가 알려져 있다는 점(창시자는 비탈릭 부테린), 지분을 많이 들고 있는 사람이 더 유리한 채굴 방식(지분증명)이 걸림돌이다. SEC가 비트코인은 증권이 아닌 ‘상품’으로 취급하지만, 이더리움은 ‘증권’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더리움 ETF가 나올 수 있느냐는 올해 리플(XRP)과 SEC의 소송 결과에 달렸다. 미국 법원이 리플이 증권성 없다고 판결한다면 이더리움도 덩달아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

 

투자은행 TD코웬워싱턴리서치그룹은 “적어도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 이더리움 현물 ETF가 시장에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최대 투자은행 JP모건도 “SEC가 이더리움의 증권성 문제를 들어 불허할 것”이라는 전망을 발표했다.

 

국내 투자자에게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는 그림의 떡이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기대감이 들끓자 ‘현행 자본법상 국내 증권사의 라이선스 범위 밖 상품’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국내 거주 중인 투자자가 미국 증시에 상장된 상품을 거래하기 위해서는 국내 증권사 트레이딩 시스템을 통해야 한다. 사실상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원천 차단한 셈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가상자산의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금융회사가 가상자산을 소유하면 안정성이 굉장히 이슈가 될 수 있다”며 “현행법상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투자자와 금융사 불만이 거세다. 금융투자업계는 가상자산을 대하는 한국의 규제 일변도 정책을 지적한다. 미국에 앞서 캐나다·독일·브라질·호주 등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일찍이 시작했다. 일본은 지난해 스테이블코인(달러화와 같은 주요 화폐에 가치가 고정된 가상화폐) 발행과 유통 확대, 자금 세탁 방지 강화 등을 골자로 자금결제법 개정안 통과시켰다. 중국은 한국에서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토큰증권(NFT) 국영 거래소를 지난해 1 이미 출범했다. 국내에서는 오는 7 19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을 위한 법률 시행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가상자산 발행과 유통, 산업 육성안은 빠져 있다. 국회와 금융당국은 ‘2단계 입법추진을 공표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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