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12월 FOMC에서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했다. Fed의 입에서, 그것도 가장 영향력이 큰 Fed 의장의 입에서 처음으로 금리인하 가능성이 언급되자 시장은 금리인하 가능성을 높여왔다.
1월 들어 발표된 12월 미국의 지표가 예상보다 견고한 모습을 보이고 다수의 Fed 위원들이 시장에 반영된 금리인하 기대감이 과도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시장은 3월 금리인하를 시작해 2024년 총 6차례 이상의 금리인하를 반영했다. 12월 FOMC 이후 7주가 지나고 1월 FOMC에서 Fed는 ‘물가가 2%로 낮추기 위한 더 많은 자신감(greater confidence)’을 얻을 때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더욱이 파월 의장이 3월 FOMC에서의 금리인하는 Fed의 기본 시나리오가 아니라고 평가하면서 3월 FOMC에서의 금리인하 가능성은 대폭 감소했다.
하지만 시장은 반대였다. 5월 FOMC에서 Fed가 금리인하를 시작해 매 회의마다 금리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금리인하 시점만 3월에서 5월로 한 차례 지연됐을 뿐 금리인하의 경로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파월 의장이 1월 FOMC 기자회견에서 고용지표 등 경제지표가 부진할 경우 예상보다 빠르게 금리인하를 단행할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12월 FOMC에서 발표한 Fed의 점도표(Fed 위원들이 생각하고 있는 기준금리 수준)에서 올해 3차례 인하를 예상했던 Fed보다 시장은 더 많은 금리인하를 예상하고 있다. 2019년 보험성 금리인하 주목하는 시장시장과 달리 Fed가 금리인하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과 Fed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의 차이 때문이다.금융시장이 주목하고 있는 시점은 2019년이다.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Fed는 제로금리를 도입했으며, 무제한 자산 매입이라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실행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강한 후폭풍으로 Fed는 장기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이어갔으며, 제로금리를 도입한 지 7년이 지난 2015년 12월에 처음으로 금리를 인상했다.
하지만 여전히 취약한 경제 회복세와 장기간 지속된 제로금리 정책에 익숙해진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Fed는 매우 더딘 속도로 금리를 인상했다. Fed의 초완화적인 정책과 2017년 출범한 트럼프 행정부의 법인세 및 소득세 감세 정책으로 미국의 경기는 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Fed도 이에 맞춰 2018년 매 분기마다 금리를 인상했으며 2019년에도 추가 인상을 시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누적되면서 미국 경기도 위축될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Fed는 앞으로 다가올 경기둔화에 대비해 경기 확장을 유지하기 위한 보험성 금리인하를 단행하게 된다.
2019년 Fed의 보험성 금리인하를 경험한 시장 참여자들은 지금 경기는 강하지만 고금리가 지속되면서 위축될 수 있는 경기를 근거로 Fed가 빠르게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의 물가는 고점 대비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볼커 정책 주목하는 Fed하지만 Fed는 여전히 금리인하 기대는 과도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으며 추가적인 물가 둔화세가 더 확인되어야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시장은 2019년 보험성 금리인하 시기에 주목하고 있지만 당시는 물가가 낮았던 상황인 만큼 Fed는 2019년보다는 1970년대를 주목하고 있다. 정확히는 폴 볼커가 Fed 의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1979년부터 1987년까지이다.
1961~65년 미국은 높은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했다. 하지만 1964년 개입을 시작한 베트남전쟁이 10년이나 이어지면서 전쟁으로 재정 지출은 계속 확대됐다.
전쟁으로 미국의 재정 상태는 악화됐지만 당시 대통령이던 린든 B 존슨은 긴축적인 재정정책보다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복지정책인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를 실행했다. 많은 재정지출이 지속되면서 시중의 통화량은 높은 증가율이 유지됐다. 높은 증가율과 함께 1971년 소련,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요 농산물 생산 지역의 이상기온으로 생산량이 급감 및 농산물 재고가 하락하면서 농산물 가격은 급등했다. 또한 1973년 10월 시작된 아랍과 이스라엘의 제4차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도 급격히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은 더욱 높아졌다.
높은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당시 Fed 의장인 아서 번스는 이를 인지하면서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했다. 번스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요인은 정부와 소비자의 지출 증가 등 수요 증가가 아닌 공급 부족과 높은 임금 상승률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통해 수요 감소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안정화시키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노조와 기업이 지닌 임금 및 물가 상승 능력을 정부가 직접 통제하는 것이 적은 비용으로 인플레이션을 안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오일쇼크로 높아지는 인플레이션은 번스의 이런 생각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됐다.
더욱이 백악관에서는 Fed로 하여금 완화적인 정책을 유지하기를 압박했다. 미국은 4년마다 대선 그리고 대선 이후 2년 이후 중간선거가 열리는 만큼 미국 정치권에서는 집권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경기가 위축되지 않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번스가 퇴임하고 후임으로 Fed 의장으로 지명된 윌리엄 밀러도 동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Fed의 변화는 폴 볼커가 Fed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개각의 일환으로 밀러 Fed 의장을 재무장관으로 임명했다. 그리고 카터 대통령은 밀러의 후임으로 당시 뉴욕 Fed 의장을 역임하고 있던 폴 볼커를 지목했다.
볼커는 의장으로 지명되기 전 카터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인플레이션을 안정화하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더 강하게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소신을 밝혔다.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자처하면서 차기 의장으로 지명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카터도 볼커가 의장이 되면 물가를 낮추기 위해 긴축적인 통화정책을 실시하면서 실업률 상승과 경제 둔화가 이어질 것을 예상했지만 카터는 볼커를 Fed 의장으로 지명했다.
볼커는 취임 초반 물가를 잡기 위한 새로운 정책 방향을 Fed 내부에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였다. 이로 인해 시장은 볼커도 전 Fed 의장과 같이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크게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979년 10월 6일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볼커의 추진력으로 FOMC 회의가 열렸고 Fed의 정책은 크게 바뀌었다. 볼커는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며,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긴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금리를 빠르게 인상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실업률 상승과 경기침체 등 미국 경제는 값비싼 비용을 치렀다.
하지만 볼커가 Fed 의장으로 취임하기 전까지 인플레이션 안정에 소극적인 정책을 지속하면서 불안한 물가 상황이 지속되는 등 부정적 영향이 지속됐던 미국은 볼커 이후 인플레이션이 안정화되면서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Fed가 물가가 안정되어야 중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이 이뤄질 수 있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스탠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