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환율·국채 놓고 미·중 전쟁
미국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경제 이슈 가운데 쌍둥이 적자 문제가 대선 결과를 좌우할 정도로 크게 부각하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엎치락뒤치락 경합을 벌이고 있는 조 바이든과 도널드 트럼프 양당 후보는 앞당겨진 TV 토론을 앞두고 확실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최대 적자국인 중국에 대해 연일 고관세 부과 공약을 내놓고 있다.
◆ 연일 중국 때리는 미국
1980년 초부터 거론되기 시작해 이제는 미국 경제 고질병이 된 쌍둥이 적자 메커니즘은 이렇다. 무역적자가 확대되면 그 폭을 메우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 결과 한편으로는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채금리가 상승해 궁극적으로 경기가 침체된다는 것이 이 이론의 골자다.
대중국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선수를 친 진영은 피터 나바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와 같은 중국 강경론자들이 포진한 트럼프 측이다. 집권 1기 반성을 토대로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대해서는 60%의 고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너무 국수주의지 않느냐는 비판에도 7개 경합주에서 모두 바이든 후보에 앞설 정도로 표심을 파고들고 있다.
당황한 바이든 후보 측은 한술 더 떠 중국산 전기차 등에 100% 관세를 올해 8월부터 때리겠다는 방침을 뒤늦게 내놓았다. 법적 근거는 미국 통상법 시리즈 중 안보와 관련된 232조를 들고 있으나 필요하면 의회 승인 없이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발동 가능한 슈퍼 301조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각국에 충격을 주고 있다.
미국 대외경제정책 역사상 유치산업 보호와 자유무역 창달을 위해 중국의 디플레 수출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용인한 것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중국의 경제 위상을 미국과 패권을 다툴 수 있을 정도로 키워줬기 때문이다. 이번에 디플레 수출로 첨단기술 산업에 차이나 쇼크가 발생하면 중국에 역전당할 확률이 높아져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응은 ‘투트랙’이다. 대내적으로는 강달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사용해온 국채 재매입(buy back)을 더 강화해 달러 가치를 아예 평가절하시켜 위안화 절하에 맞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6월 안에 발표될 환율 보고서에서도 BHC(베넷-해치-카퍼) 원칙과 상관없이 중국을 환율심층대상국(종전의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대응도 만만치 않다. 대미국 통상정책 기조인 ‘팃 포 탯(tit for 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 원칙대로 관세로 맞대응할 뿐만 아니라 위안화 절하 카드를 들고 나왔다. 미국의 고관세는 가격할증제이기 때문에 위안화 절하로 대응하면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더 무서운 것은 디플레 수출로 미국 경제에 차이나 쇼크를 주겠다는 숨은 의도가 깔려 있는 점이다.종전과 달리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를 내다 팔아 위안화 가치를 절하시키고 있는 것도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한때 1조3000억 달러에 달했던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분은 7500억 달러 수준까지 줄었다. 미국이 중국의 디플레이션 수출을 막기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던 6월 들어서는 더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국채 매각은 직접적으로 미국을 겨냥하고 있다. 보유분 매각으로 국채금리가 올라가면 미국은 이자 부담이 급증해 국가부도 확률이 높아진다. 대선을 앞두고 최대 경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쌍둥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 가치를 누그러뜨리는 바이든 정부의 노력도 반감된다.
세계경제 양대 대국 간에 관세와 환율, 그리고 국채 전쟁이 벌어짐에 따라 연초부터 잘 들어오던 외국인 자금이 지난 5월 말 이후 대거 이탈세로 돌아섰다. 국내 증시의 버팀목인 외국인 자금이 이탈함에 따라 코스피지수가 급락하고 원·달러 환율도 급등하고 있다. 과연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상승 간의 악순환 고리가 형성될 것인가 여부다.
◆ 한국, 제2의 외환위기 우려?
외환위기 당시 서든 스톱에 비유될 정도로 외국인 자금이 갑작스럽게 매도세로 돌아선 데는 미국과 중국 요인 이외에 우리 내부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가장 큰 것은 외국인의 기대가 컸던 밸류업 대책에 대한 실망감이다. 3개월 만에 급조된 최종안을 보면 강제성을 띠고 있지 않은 데다 상속세 인하 등 상법 개정이 포함돼 있지 않다.
상징성이 높은 대기업이 흔들릴 조짐을 보이는 것도 외국인 자금이 이탈하는 요인이다.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의 공급망 파트너십 협정에 차질을 빚은데 이어 창사 이래 처음 ‘노조 파업’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재정 사정이 여의치 않은 SK그룹이 1조2000억원이 넘는 재산 분할금을 어떻게 처리해 나갈지도 관심사다.더 주목해야 할 것은 국제 환투기 세력이 원화 약세에 베팅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이다. 머큐리(mecury·펀더멘털) 면에서 미국 경제에 비해 뒤떨어지고 마스(Mars·정책) 면에서 우리 정부가 ‘아오키 법칙’에 걸려 있어 외환 당국의 환율방어능력이 의심받고 있기 때문이다. 아오키 법칙이란 대통령과 집권당의 지지도가 50% 밑으로 떨어진 것을 말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미국과 중국의 요인이 큰 점을 고려하면 조급한 나머지 외환시장을 직접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최근 엔저 방지를 위한 일본 정부의 환시 개입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국제 환투기 세력 간 연대 움직임이 나타날 때는 특정국이 단독으로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는 방안도 그렇다. 통계기업상 요인분석과 상관계수를 보면 우리처럼 포트폴리오 지위가 신흥국에 속해 있는 국가의 외국인 자금 유출입은 금리차보다 펀더멘털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한다. 소외계층 이자 부담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의 문제가 한계수준을 넘은 여건에서 금리를 올리면 우리 경제 펀더멘털이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조만간 미국 재무부가 24년 만에 재개하는 바이백(buy back·만기 이전에 국채를 사들이는 것)을 추진하면 국채금리가 안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보유 국채 매각에 따라 원·달러 환율을 상승시키는 간접 효과도 줄어든다. 이미 합의해 놓은 한·미·일 외환 공조 채널을 가동할 경우 국제 환투기 세력에도 대응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모리스 골드스타인의 위기판단지표 등으로 평가해 보면 외환위기가 재발할 확률은 낮게 나온다. 현시점에서 여야 정치인을 포함해 우리 국민 모두가 네탓, 내탓하기 전에 ‘프로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공공선)’ 정신을 발휘하는 것이 외국인 자금 이탈과 원·달러 환율 상승 간의 악순환 고리를 차단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