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 석유의 시대를 지나, 21세기 반도체와 함께 리튬, 니켈 등 광물이 미래 산업의 쌀로 부상하면서 전 세계가 이른바 ‘광물전쟁’ 중이다. 치솟은 광물의 몸값만큼 관련 비즈니스의 투자 전망은 어떻게 이어질까.
전 세계적으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열풍이 거세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 실천이 인류의 최대 과제로 대두되며 희소금속을 핵심 소재로 사용하는 전기자동차, 배터리(2차전지), 신재생에너지 등이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전문 시장조사기관인 SNE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기차 수요는 2019년 232만 대에서 연평균 33%씩 성장해 2030년에는 약 5568만 대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용 배터리 수요 역시 2019년 118기가와트시(GWh)에서 연평균 37%씩 증가해 2030년 3647GWh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는 전기차 외에도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스마트폰, 인공위성, 태양광 전지 등 충·방전이 필요한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만큼 부가가치가 막대하다. 배터리 산업의 패권을 쥐는 국가가 향후 경쟁우위에 서게 될 것은 어쩌면 자명한 일. 배터리 밸류체인의 시작점인 원자재 확보를 위해 전쟁이란 단어가 동원될 만큼 치열해진 이유다.
이미 리튬, 니켈 등 배터리 핵심 광물을 보유한 국가들이 관련 산업 국유화 등 자원 통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수요 급증에 따라 광물 쓰임새가 늘자 생산과 가격을 직접 통제해 자국의 경제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셈법이다.
최근 리튬 매장량 세계 1위 국가 칠레는 리튬 산업을 국유화했다. 지난 4월 20일 TV 연설에 나선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리튬은 국가가 통제하는 공공-민간 파트너십으로만 생산될 것”이라며 “이는 단기적인 경제 성장의 기회이자 지속 가능하고 발전된 경제로 전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선언했다.
비단, 칠레뿐만은 아니다. 볼리비아도 2008년 이미 리튬을 국유화했고, 아르헨티나도 지난 1월 라리오하주 정부를 통해 리튬을 전략물자로 지정했다. 멕시코는 지난 2월 리튬 국유화 법안을 공포했다. 중남미 국가들은 국유화에서 더 나아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같은 ‘리튬 카르텔’ 결성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아시아에서도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자국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인도네시아가 대표적이다. 인도네시아는 자국 산업 활성화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니켈 수출을 금지했다. 아울러 올해부터는 구리, 보크사이트 등으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원자재 수출을 막는 것은 인도네시아 내 정·제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원광 형태가 아닌 국내에서 1∼2차 가공을 통해 관련 산업도 키우고 수출품의 부가가치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이처럼 ‘공급자’를 자처하는 국가들의 자원민족주의 행보가 두드러지면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광물 ‘수요국’들은 ‘안정적인 공급’에 사활을 건 상황이다.
주요 국가들도 앞 다퉈 필수적인 광물자원을 핵심 광물로 지정하고 있다. 유럽연합(EU) 위원회는 2020년에 83종 광물종 중 경제적인 중요성과 공급 위험성이 높은 30종을 핵심 광물로 지정했다. 핵심 광물은 EU 산업에 기반한 재생에너지, 전기차 등 이동장치, 국방 및 항공우주, 디지털 기술과 같은 전략 분야 개발에 필수적이다. 미국도 중요 광물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핵심 광물 35종을 지정했다.
우리 정부도 이러한 공급 환경 구축을 위해 탄력적인 대책에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월 '핵심 광물 확보 전략'을 발표했다. 한국은 전기차 배터리와 양극재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핵심 원자재 상당수를 해외에 의존하는 우리 기업의 수익성과 경쟁력 약화 우려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리튬의 경우 배터리 양극재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고 수요 폭증으로 가격이 급등해 국내 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에는 핵심 광물 수요가 2020년 대비 리튬은 42배, 코발트 21배, 희토류는 7배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관리가 필요한 33종의 핵심 광물을 선정했고, 반도체, 2차전지 등 첨단 산업 공급망 안정화에 필요한 10대 전략 핵심 광물인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흑연과 세륨, 란탄, 네오디뮴, 디스프로슘, 터븀 등 희토류 5종을 집중 관리한다.우리나라의 소재 기업들도 리튬 등 배터리 소재에 쓰이는 광물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유럽 시장 진입로가 확보된 만큼 광물의 안정적인 조달이 곧 시장 점유율 확대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포스코홀딩스는 니켈과 리튬 공급망 구축을 통해 2030년까지 니켈 22만 톤, 리튬 30만 톤 생산·판매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올해 하반기 준공을 목표로 뉴칼레도니아에 연산 2만 톤 규모의 니켈 정제 공장을 건설 중이며, 2021년에는 호주 니켈 광산 업체인 레이븐소프의 지분 30%를 2억4000만 달러(약 3100억 원)에 인수했다.
LG그룹에서는 계열사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이 가세했다. LG화학은 최근 미국 광산 업체인 피드몬트리튬과 20만 톤 규모의 리튬정광 구매 계약을 맺었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해 미국 자원 기업인 컴퍼스미네랄과 2025년부터 6년 동안 탄산리튬 약 1만1000톤을 공급받기로 했다. LX인터내셔널은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 여러 곳을 대상으로 투자를 검토 중이다. SK온도 리튬·니켈 확보에 적극적이다. 지난해 10월 호주 자원 업체인 레이크리소스의 지분 10%를 사들였고, 내년부터 10년 동안 레이크리소스에서 리튬 23만 톤을 공급받는 계약도 맺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에코프로 등과 인도네시아에 연산 3만 톤 규모의 니켈 공장을 짓는 계약을 했다.
투자 주요 섹터로 부상한 광물
그렇다면 광물 원자재에 대한 투자 전망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광물 관련 종합상사(무역)나 배터리 기업들은 장기적으로 투자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워런 버핏의 투자 행보가 대표적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가 소유한 자회사인 재보험사 내셔널인뎀니티(National Indemnity Company)는 일본 무역 기업 5곳의 지분을 평균 8.5% 이상으로 늘렸다고 6월 1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CNBC에 따르면 해당 일본 무역 기업은 이토추, 마루베니,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다.
이들 기업에 대한 지분의 총 가치는 미국 이외 국가에서 버크셔해서웨이가 보유한 주식 전체의 가치를 넘는 것으로 전해졌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최고경영자(CEO)인 버핏이 5개 기업 중 특정 기업의 지분을 최대 9.9%까지 인수할 것이라고 약속한 가운데 일본 투자를 장기적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 4월 버핏은 일본을 방문해 이들 5개 기업을 확인한 뒤 다양한 일본 무역 기업에 대한 투자를 7.4%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들 5개 기업은 일본의 종합 무역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이며, 가치·현금흐름을 우선하는 다각화된 장기 투자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CNBC는 보도했다. 또 이들 기업은 오래전부터 일본의 에너지·광물·식품 수입과, 완제품 수출의 중심이었다고 덧붙였다.
버크셔해서웨이는 이들 5개 기업 이외 일본의 다른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고 있다. 일학개미들도 버핏 회장을 따라 일본 주식을 쓸어담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이 지난 4월부터 한 달여간 순매수한 일본 주식 상위권엔 버핏이 투자한 마루베니(3위·466만4485달러), 이토추(8위·143만3029달러), 미쓰비시(10위·110만9918달러) 등이 포진돼 있다. 스미토모 상사그룹 산하의 광산 기업인 금속광산(6위·170만3562달러) 역시 큰 규모로 사들였다.
이에 대한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버핏 회장이 일본 종합상사에 투자한 건 인플레이션 시대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며 "광물자원 민족주의가 태동하는 가운데 버크셔해서웨이가 투자한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등은 광물자원에 대한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아울러 최근 2차전지 주가도 다시 단기간에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주요 2차전지 시장인 중국 내 판매량 증가와 소재·광물 수급 개선으로 2차전지 관련 기업의 이익이 개선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또한 중국 탄산리튬 가격이 오르며 시장 상황이 개선되는 점도 투심에 긍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강련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5일 기준 전기차 배터리용 탄산리튬의 거래 가격은 1톤당 30만7500위안(약 5646만 원)으로 4월 말 대비 71% 급등했다.
이에 대해 조철희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기차용 2차전지 사용량의 절반을 담당하는 중국의 4월 전기차 판매량 급증과 함께 소재·광물 수급 개선세는 한국 소재 기업의 이익률 반등을 이끌 것"이라며 "올해 한국 소재 업체들의 판매량 증가의 핵심인 미국 전기차향 전지 판매 강세도 지속되고 있어 기업의 이익 증가에 본격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