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기업과 납품가 갈등, 연이어 수면 위로 드러나
존슨앤드존슨.유니레버 등 글로벌 기업들과 협상서 이견
쿠팡, 올해 흑자 달성 목표...수익성 개선 위한 움직임
쿠팡, CJ올리브영 '경쟁 상대'로 지칭
온라인+오프라인 합친 '전체 시장' 기준
공정위 행정 소송 판결 앞두고 전략적인 행보
쿠팡이 ‘쿠쪽이(쿠팡+금쪽이)’를 자처하고 있다. ‘금쪽’은 본래 금처럼 귀하다는 의미로 사용됐지만 요즘 들어서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밈(meme·인터넷 유행)으로 쓰인다. 쿠쪽이는 쿠팡이 말썽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쿠팡이 쿠쪽이로 불리는 것은 플랫폼에 물품을 공급하는 거래 업체와의 연이은 갈등 때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것만 해도 한두 개가 아니다. 심지어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아는 큰 기업들. CJ제일제당·존슨앤드존슨·유니레버…. 납품 조건 협상에서 의견차를 좁히지 못했다는 게 핵심이다.
플랫폼과 제조사의 납품가 협상은 일상이다. 그럼에도 쿠팡의 태도는 공격적이다. 그 이유는 쿠팡이 처한 상황으로 유추할 수 있다. 올해 사상 첫 ‘연간 흑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고 공정거래위원회와의 소송에서도 이겨야 한다. 쿠팡의 행보는 이 같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다. 쿠팡이 ‘공공의 적’, ‘쿠쪽이’가 되고 있는 이유다.
납품가 갈등 표면화
대기업을 상대로 한 쿠팡의 전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 존슨앤드존슨, 글로벌 생활용품 기업 유니레버 등과 갈등이 표면화됐다.
쿠팡은 존슨앤드존슨의 일부 제품의 로켓배송을 중단했다. 존슨앤드존슨은 화장품 브랜드 뉴트로지나·아비노, 유아 용품 존슨즈베이비, 구강 청결제 리스테린 등을 보유한 회사다. 납품가 협상 과정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쿠팡이 로켓배송 서비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은 “존슨앤드존슨이 납품하는 리스테린 제품의 경우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인 켄뷰코리아 분사 등 해당 업체 사유로 인해 납품 조건 협상 자체가 지연됐다”며 “현재 원만한 협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유니레버는 생활용품 브랜드 도브·바세린, 탈취제 브랜드 렉소나 등을 보유한 회사다. 업계에 따르면 쿠팡이 유니레버 측에 납품가 인하와 수량 확대를 요구했지만 유니레버 측에서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쿠팡이 발주를 중단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쿠팡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쿠팡은 “이미 지난 6월 협상이 완료돼 정상 판매되고 있고 유니레버와 쿠팡은 오히려 비즈니스 확대를 긍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업체 측의 사정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제품’은 여전히 협상 과정에 있다고 설명했다. 쿠팡은 유니레버가 물량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직 협상을 완료하지 않은 제품명은 구체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거래처를 배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고객을 위해'
쿠팡의 납품가 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을 처음이 아니다. LG생활건강·CJ제일제당과도 같은 문제가 있었다. 다만, 이들 기업과 달리 존슨앤존슨·유니레버 등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쿠팡은 CJ제일제당과 LG생활건강의 제품을 로켓배송 서비스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 올해 연간(2023년 1~12월) 마진율을 놓고 협상에서 이견이 좁혀지지 않자 CJ제일제당 상품에 대한 발주를 중단한 것. 지난해 말 이후 비비고·햇반·고메 등 CJ제일제당 브랜드에 대한 로켓배송 서비스는 완전 중단된 상태다. 감정의 골이 깊어진 만큼 양 사가 합의에 도달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LG생활건강과의 문제는 2019년 시작됐다. 2019년 6월 LG생활건강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규모유통업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쿠팡을 신고하면서다. 공정위는 2021년 8월 쿠팡에 시정 명령(통지 명령 포함)과 함께 과징금 총 32억9700만원을 부과했지만 쿠팡은 공정위 판결에 반발해 올해 2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LG생활건강은 최근까지도 지속적으로 ‘로켓배송 입점’을 요청하고 있지만 쿠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쿠팡은 이 모든 행보가 소비자들을 위한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쿠팡은 “고물가 시대 소비자들에게 최저 가격을 제공하기 위해 공급 업체와 납품 단가 협상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유통업계와 공급 업체 간 납품 단가 협상은 비즈니스의 일상적인 활동”이라며 “일부 글로벌 거대 생활용품 기업은 지난해부터 일부 제품에 대해 최고 10% 이상 가격을 인상했다. 쿠팡은 공급 업체의 가격 인상이 고객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납품 단가 협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쿠팡이 해당 업체에 일방적으로 공급을 중단했거나 협상이 결렬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타이밍'에 숨겨진 비밀
플랫폼과 제조사의 마진율 협상은 항상 있는 일이다. 양측이 통상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만큼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다음 해의 납품가를 결정짓기 위해 연 1회의 협상은 반드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쿠팡의 태도가 공격적으로 변했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사와 플랫폼 간 힘겨루기는 일상”이라면서도 “그런 점을 고려해도 쿠팡이 마진율을 높게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유는 단기 실적 개선, 둘째 이유는 주도권 확보”라고 설명했다.
이유는 쿠팡의 실적에 있다. 올해 쿠팡은 사상 첫 연간 흑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는 적자였다.
분위기도 좋다. 올해 1분기에 매출 58억53만 달러(약 7조3990억원), 영업이익은 1억677만 달러(약 1363억원)를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 증가했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흑자 전환됐다. 2분기 역시 흑자가 예상된다.
쿠팡은 지난해 3분기부터 올해 1분기까지 3개 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고 있고 영업이익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7742만 달러(약 1027억원)를, 4분기에는 8340만 달러(1159억원)를 기록했다. 쿠팡의 실적 성장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연간 흑자도 충분히 가능하다.
증권업계에서도 올해 흑자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남성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쿠팡의 2023년 실적 성장 폭은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그 근거는 로켓와우 멤버십 가격 인상, 쿠팡파이낸스 사업 확대에 따른 성장, 풀필먼트 서비스 이용 셀러 확대, 시장 지배력 확대에 따른 마진율 상승, 상각전영업이익(EBITDA) 개선에 따른 운전 자본 개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활성 고객(제품을 분기에 한 번이라도 구매한 고객)이 증가하고 객단가(고객 1인당 사용 금액)도 증가하는 등 수치는 개선되고 있다. 올해 1분기 활성 고객은 1901만 명으로 전년 동기(1811만2000명) 대비 5% 늘어났고 객단가는 8% 증가한 305달러를 기록했다.
여기에 지난해 6월 유료 멤버십 가격을 2900원에서 4990원으로 72.1% 인상한 만큼 고객 서비스 부문에서는 가격 조정이 어렵다. 남은 것은 납품가를 조정해 더 많은 마진을 남기기다. 쿠팡이 기업들과의 납품가 협상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만년 적자 기업’이라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올해 목표한 흑자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인 셈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는 쿠팡에 아주 중요한 한 해”라며 “지난해까지는 ‘계획된 적자’를 방패로 내세워 넘어갔지만 올해는 다르다. 숫자로 기초 체력이 견실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100원이라도 더 벌어야 하니 협상에 공격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올리브영과의 갈등
쿠팡이 ‘쿠쪽이(쿠팡+금쪽이)’가 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헬스 앤드 뷰티(H&B) 스토어 CJ올리브영과의 진실 공방 때문이다. 올리브영이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갑질’을 했는지가 쟁점이다.
CJ올리브영이 쿠팡을 경쟁 상대로 여기고 뷰티 시장 진출과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 힘없는 중소 납품업자를 대상으로 쿠팡 납품과 거래를 막는 ‘갑질’을 2019년부터 이어 왔다는 게 쿠팡의 주장이다.
쿠팡은 갑질 사례로 △중소 A사가 ‘쿠팡에 납품 계획’을 결정하자 매장을 축소하겠다고 협박한 일 △중소 B사가 쿠팡에 납품 계획을 알리자 B사의 인기 제품을 쿠팡에 납품할 수 없는 ‘금지 제품군’으로 지정한 일 △중소 C사에 ‘쿠팡에 납품하면 입점 수량과 품목을 축소하겠다’고 협박한 일 등을 꼽았다.
결국 쿠팡은 7월 24일 오전 공정위에 CJ올리브영 관련 신고서를 제출했다. 배타적 거래 강요 행위 등 대규모유통업법 제13조를 위반했다는 내용이 골자다.
하지만 올리브영은 쿠팡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반박한다. 올리브영 관계자는 “올리브영은 타 채널에 협력사 입점을 제한한 사실이 없다”며 “공정위 신고 내용이 확인되는 대로 적극 대응하겠다. 공식 방침을 내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4년간 무슨 일 있었나
그렇다면 쿠팡은 왜 올리브영을 걸고넘어졌을까. 쿠팡의 전략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2019년 LG생활건강과의 갈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납품가 인하’를 요구한 쿠팡과 ‘그럴 수 없다’는 LG생활건강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며 양 사의 거래가 중단됐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에 ‘대규모유통업법’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쿠팡을 신고했다.LG생활건강은 쿠팡이 △배타적 거래 강요 금지(경쟁사보다 낮은 납품가 요구) △경제적 이익 제공 요구 금지(손실분에 대한 보전 요구) △경영 정보 제공 요구 금지(다른 거래처에 대한 매출 정보 요구) 등 대규모유통업법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LG생활건강은 “쿠팡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주문을 취소하고 거래를 종결했다”고 밝혔다.
2021년 8월 공정위는 LG생활건강의 손을 들어줬다. 쿠팡의 행위가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4호(거래상 지위 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공정위는 쿠팡이 경쟁 온라인몰의 판매 가격을 인상하도록 강요한 경영 간섭 행위 등의 법 위반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하고 과징금 32억9700만원을 부과했다. 쿠팡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난해 2월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은 현재 진행 중으로, 이르면 8월에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이번 사건은 온라인 유통업자와 대기업(또는 인기 상품을 보유한) 제조사 간의 거래상 지위 인정 여부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첫 사례”라며 “온라인 유통업자도 오프라인 유통업자(백화점·마트 등)와 마찬가지로 제조사에 대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고 결론지었다.
쿠팡의 묘수
업계에서는 이번 올리브영 논란이 공정위 행정 소송과 관련한 전략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공정위에서 언급한 ‘우월적 지위’를 반박하기 위한 시도로, 그 기준이 되는 ‘시장 획정’을 문제 삼는 셈이다. 시장 획정은 경제적으로 의미 있는 특정 시장의 범위를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공정위는 특정 시장에서 한 회사의 점유율이 과반이거나 3개 이하 사업자의 점유율이 75% 이상이면 시장 지배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쿠팡은 후자에 해당해 우월적 지위가 인정됐다.반면 쿠팡의 주장은 다르다. 사건의 발단이 된 2017~2018년 당시 쿠팡은 G마켓과 11번가에 이은 온라인 시장 3위 사업자였고 전체 소매 시장점유율은 약 2% 정도에 불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쿠팡은 이 주장을 펼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합친 전체 유통 시장을 점유율의 기준으로 내세웠다.
이커머스 시장으로만 한정하면 쿠팡은 1위 사업자가 맞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쿠팡은 지난해 기준 24.5%의 점유율을 확보해 2위인 네이버쇼핑(23.3%)보다 영향력이 크다. 하지만 전체 유통 시장(602조원 규모)으로 시장 기준을 확대하면 1위는 신세계·이마트(5.5%), 쿠팡은 점유율 4.4%로 2위가 된다.
김범석 쿠팡 창업자도 올해 1분기 실적 발표 당시 “향후 3년 내에 5500억 달러(약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거대한 유통 시장에서 쿠팡의 시장점유율은 아직 한 자릿수”라며 “우리의 여정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올리브영도 마찬가지다. 올리브영의 오프라인 매장은 1300개로, 매장 기준으로 H&B 스토어 시장점유율은 70% 이상이다. 경쟁사인 롯데쇼핑의 롭스, GS그룹의 랄라블라 등이 잇달아 사업을 철수하면서 독보적 영향력을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시장 기준을 전체 화장품(22조원)으로 확대하면 올리브영의 시장점유율은 12% 수준으로 줄어든다.
업계에서는 쿠팡이 올리브영을 문제 삼은 게 행정 소송의 전략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온라인 사업자 쿠팡이 오프라인 사업 중심의 올리브영을 ‘경쟁 사업자’로 지칭했다. 양 사의 경쟁 구도가 성립된다면 ‘거래상 우월적 지위가 인정된다’는 공정위의 판결을 정면으로 반박하게 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유통 시장은 점유율 기준이 제각각인 상황”이라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영역이 확실하게 나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만 따지면 독과점 사업자라도 오프라인 점유율을 합치면 영향력은 급감한다. 오프라인 사업을 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대로 오프라인에서 시장점유율이 높아도 온라인 성과가 미약해 온·오프라인을 합치면 점유율이 크게 낮아지는 경우도 있다”며 “쿠팡과 올리브영은 각각의 영역이 확실하다는 점에서 다르면서도 비슷한 처지”라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미지'
문제는 이미지다. 거래처와의 연이은 갈등은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2010년 소셜 커머스 서비스를 선보인 쿠팡의 이미지가 처음부터 나빴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혜자(혜택이 많아 만족스럽다) 서비스’라는 평이 많았다.
실제 쿠팡은 유료 멤버십 출시 이전 △배송이 하루 지연될 때마다 적립금 3000원 △총 결제 금액 2만원 이상이면 5000원 캐시 적립(프로모션) △주문한 제품 품절 시 판매가 30% 쿠팡캐시 지급 등을 강점으로 내세워 신규 고객을 적극 확보했다. 혜자 이미지를 구축한 쿠팡은 2018년 유료 멤버십을 출시하며 수익성 개선에 집중했다. 쿠팡의 유료 멤버십 ‘와우 고객’은 2020년 470만 명에서 2021년 900만 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1100만 명을 돌파하며 이커머스업계 1위 사업자로 입지를 굳혔다.
쿠팡은 ‘고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제조사들이 대기업이니 저렇게 싸울 수 있지, 중소회사들은 어떻겠느냐’, ‘왜 고객을 방패로 쓰는지 모르겠다’, ‘쿠팡은 유독 이런 소식만 자주 들린다’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