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와이오밍 주 작은 휴양 도시에서 열렸던 ‘2023 잭슨홀 미팅’이 끝났다. 금리 변경 적정성 평가, 중립 금리 추정, 물가 목표치 상향 등 새로운 통화 정책을 모색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놓고 세계적인 석학과 각국 중앙은행 총재 간에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런 만큼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발언에 더 집중됐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을 여름휴가철 이후 Fed의 통화 정책 방향과 관련해 의미가 큰 것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단골 주제인 경제 전망은 “경기가 괜찮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는 9월 전망으로 넘겼다. 양대 책무와 관련해 고용 시장은 “건전하다”는 종전의 방침을 반복했고 물가 안정 문제는 말을 아꼈다.
금리 변경 방향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
시장 참여자가 바라던 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 여부는 어떤 신호를 주지 못함에 따라 금리 변경 방향과 증시 앞날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나오고 있다. 1년 전에는 파월 의장의 강한 매파 발언으로 1%포인트 금리 인상안이 부각되면서 9월 Fed 회의 때까지 다우존스지수가 4000포인트 이상 급락하는 ‘잭슨홀 악몽’이 나타났다.
Fed와 파월 의장의 의향을 알 수 있는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과 잭슨홀 발언을 토대로 올해 9월 Fed 회의에서 논의될 수 있는 방안은 세 가지다. 1안은 금리 0.5%포인트 인상과 양적 긴축(QT) 475억 달러, 2안은 금리 0.25%포인트 인상과 QT 475억 달러, 3안은 금리 동결과 QT 475억 달러 혹은 폐지하는 시나리오다.
9월 19일부터 양일간 열리는 Fed 회의까지 최악 시나리오인 1안이 부각되면 올해 잭슨홀 악몽은 1년 전보다 더 크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중립 시나리오인 2안이 부각되면 잭슨홀 악몽이 나타나더라도 학습 효과 때문에 낙폭은 1년 전에 비해 크게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 월가에서 바라는 3안이 부각된다면 올해 여름철 서머 랠리가 이어지면서 1990년대 후반 신경제 신화를 바탕으로 나타났던 골디락스 장세에 버금가는 증시 호황도 기대해 볼 수 있다.
9월 Fed 회의에서 어느 안으로 결정될 것인지는 현재 물가 수준에 대한 인식과 물가 대책으로 금리 인상 효과를 어떻게 보느냐에 좌우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물가 수준이 여전히 높다고 인식하고 금리 인상 효과가 크다고 판단되면 1안으로 결정될 확률이 높다. 1년 전 잭슨홀 악몽이 나타났던 것도 이 경우다.
하지만 더는 물가 수준을 내리기 어렵고 금리 인상 효과가 적다고 판단되면 2안이나 3안을 선택하면서 물가 목표치 상향과 같은 제3의 방안이나 재정 정책과의 공조를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Fed가 현재 물가 수준을 판단할 때 내부적으로는 단순히 물가 목표치(현재 2%)보다 중립 금리 수준에 따른 물가 목표치를 더 중시한다. 금리 인상 효과도 물가가 얼마나 떨어졌는지보다는 사후적으로 통화 정책의 적정성을 따지는 ‘테일러 준칙’ 혹은 ‘수정된 테일러 준칙’으로 판단한다.
두 가지 판단 요건을 감안하면 9월 Fed 회의에서 1안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3안도 회의 때마다 들쑥날쑥하는 스네이크형 금리 변경(5월 0.25%포인트 인상→6월 동결→7월 0.25%포인트 인상→9월 동결)으로 통화 정책의 3대 생명인 선제성·일관성·신뢰성을 한꺼번에 잃을 우려가 있다.
2안이 가장 무난해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Fed의 금리 변경 원칙(go-stop-hold)에도 부합된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이 여전히 ‘매파적’이라는 점을 근거로 올해도 1년 전 ‘붕괴론’처럼 증시 앞날을 비관적으로 몰고 가는 시각은 경계해야 한다.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간 미묘한 시각 차에 주목
앞으로 환율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 이후 더 심해지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 간 미묘한 시각 차에 주목해야 한다. 잭슨홀 미팅 이전부터 파월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간 밀월 관계에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등을 돌리고 있는 가운데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대놓고 적대감을 표명하고 있다.
주요 중앙은행 총재 간 시각 차는 2년 전부터 미국이 역환율 전쟁의 잣대로 활용해 온 ‘달러 인덱스의 함정’에 있다. 역환율 전쟁은 수출 증진을 위해 평가 절하를 유도하는 종전과 달리 인플레이션을 수출하기 위해 평가 절상을 도모하는 환율 전쟁을 말한다. 인위적인 평가 절상은 평가 절하 이상으로 경쟁국에 피해를 주는 근린 궁핍화 정책에 해당한다.
달러 인덱스의 함정을 풀어보기 위해서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금태환(1온스=35달러) 정지 선언 이후 Fed는 통화 정책의 참고 지표로 달러 가치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없어졌다. 고심 끝에 당시 세계 경제 중심지였던 유럽 통화를 중심으로 달러 인덱스를 산출해 지금까지 활용해 오고 있다.
달러 인덱스의 구성 통화를 보면 유로화 57.6%, 엔화 13.6%, 파운드화 11.9%, 캐나다 달러화 9.1%, 덴마크 크로네화 4.2%, 스위스 프랑화 3.6%로 유럽의 통화 비율이 77.3%에 달한다. 유럽 통화만 강세를 보이면 달러 인덱스는 떨어지고 약세를 보이면 올라가는 결정적인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1973년 만들어진 달러 인덱스는 반세기가 지났지만 구성 통화와 각 구성 통화 간 비율이 변하지 않았다. 같은 기간 중 중국을 필두로 아시아 국가는 부상한 반면 유럽 국가는 통화 위기, 재정 위기,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등을 거치면서 쇠퇴했다. 구성 통화 간 위상도 크게 달라져 달러 인덱스의 태생적 한계는 해가 지날수록 더 심하게 노출돼 왔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역환율 전쟁은 인플레이션 통제 여부에 따라 두 단계로 구분된다. 작년 10월 이후 Fed는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서 ‘피벗’의 필요성이 제기된 반면 ECB는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려 왔다. 이 과정에서 달러 인덱스가 크게 떨어져 미국은 강달러를 통해 인플레이션을 수출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마지막 관문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수입 물가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점이다. 이때부터 미국의 달러 정책은 유럽 통화에 대해서는 ‘약세’, 아시아 통화에 대해서는 ‘강세’를 유도하는 이원적(two track) 전략을 추진했다. 특히 중국 위안화에 초점을 맞춰 달러 강세를 유도해 왔다.
아시아 중앙은행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국 통화의 약세를 방치하면 다 잡아 가던 인플레이션이 재발하는 ‘볼커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볼커의 실수는 1980년대 초 폴 볼커 전 Fed 의장이 안정 기조가 정착되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금리를 내려 인플레이션이 재발한 사건을 말한다.
우려되는 것은 1차 역환율 전쟁 기간 중 금리 인상을 통한 자국 통화 방어 효과가 작은 비기축 통화국의 한계를 느낀 아시아 국가들이 이번에는 외환 시장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점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위안화 절하를 방지하기 위해 연일 보유 달러화를 풀고 있다. BOJ도 엔‧달러 환율이 145엔에 다가서자 구두 개입하기에 바쁘다.
미‧중 간 틈새에 끼인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이미 달러 약세 속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고 원화의 변동성도 베트남 동화보다 한때 5배에 달할 정도로 2차 역환율 전쟁의 피해가 크게 나타나고 있다. 당장 선택할 수단도 마땅하지 않다. 파월 의장의 잭슨홀 발언 이후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 쉽게 안정을 찾기가 어려울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