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본인과 가족이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라는 역할 외에도 여러 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자산 증식 효과다. 그런데 이런 시세차익이라는 기능 외에도 부동산에는 상당히 중요한 기능이 있다. 바로 자산을 담아두는 기능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평생을 일한 대가로 50억원 정도의 돈을 마련해서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어디에 보관해야 할까?
대접과 간장종지
‘현금이 왕’이라고 하니, 그 큰돈을 모두 지폐로 바꾸어서 항아리에 담아두어야 할까? 하지만 강도라도 들어오게 되면 그 돈을 모두 뺏기게 된다. 어찌해서 강도를 잡아 감옥에 보낼 수는 있겠지만, 그들이 이미 다른 곳으로 빼돌린 돈은 찾기 어렵다. 돈에 이름이 달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래서 안전하게 보관하려면 현찰로 보관하는 것이 아니라 은행에 예금으로 넣어두어야 한다. 예금은 원칙적으로 본인 외에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50억원이나 되는 거금을 은행에 넣어두게 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은행이 망하기라도 하면, 예금자 보호법에 따라 법적으로 보호되는 5000만원 외에 나머지 돈은 날리게 된다.
그러므로 50억원 전액을 보호받으려면 100개 은행에 계좌를 열고, 5000만원씩 분산해서 예금을 해야 원금이 보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지 않다. 같은 은행의 여러 지점도 안 되고, 100개의 다른 은행을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식에 투자하면 어떨까? 주식은 투자 상품이기 때문에 예금자 보호법에도 해당되지 않는다. 50억원을 예탁한 증권회사가 망하기라도 하면, 은행과 달리 5000만원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구나 변동성이 크다는 것도 문제가 된다. 전 재산을 예탁했을 때 주가가 오르면 다행이지만 주가 크게 내리면 (수입이 더 이상 없는) 은퇴한 사람은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소액의 경우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투자를 하지만 고액 자산의 경우는 부동산에 묻어두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집을 포함한 부동산의 경우, 우리나라는 법정 등기 제도를 채택하기 때문에 정부가 그 재산을 지켜준다. 그 재산의 가치를 지켜준다는 뜻이 아니라 그 재산의 소유권을 지켜준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강도가 집문서를 훔쳐가도 아무 곳에서도 쓸 수 없다. 집문서(등기권리증)는 언제나 재발행 가능한 서류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부동산은 자산을 안전하게 담아두는 그릇이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릇은 크기가 모두 같지는 않다. 간장 종지와 같은 작은 그릇이 있는가 하면 대접과 같은 커다란 그릇도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내용물을 담을 수 있는 양이 다르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1000만원만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10억원 이상을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이 있다.
그런데 50억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1000만원만 담아둘 수 있는 ‘간장 종지’에 자산을 담아두려 한다면 그릇은 500개나 필요하다. 하지만 10억원을 담아둘 수 있는 ‘대접’에 담아두려 한다면 그릇은 5개만 준비하면 된다. 이때 그릇을 500개 준비해야 하는 것과 5개만 준비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유리할까? 후자가 더 유리하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관리 포인트가 줄어든다. 쉽게 말해 10만원씩 들어 있는 통장을 100개가 있다고 부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냥 통장 하나에 1000만원을 넣어두는 것과 금액 면에서는 같지만 통장을 100개나 가지고 있다면 관리하는 데 불편할 따름이다. 심지어 부동산의 경우는 더 하다. 집을 500채를 가지고 있다면, 본인이 거주하는 집 한 채를 제외하고는 임대를 준 집일 것이다.
500명에 육박하는 임대 물건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집에 수리가 필요하다면 고쳐주어야 한다. 임대 기간이 끝나서 세입자가 나가게 된다면 새로 세입자를 구해야 하고, 새로운 세입자를 구하기 전까지는 (기존 임대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니) 마음고생이 따를 수밖에 없다. 요즘과 같은 역전세난이라도 발생하면 수많은 임대 물건에 대해 대책을 세우기도 어렵다.
두 번째, 일정 액수로 여러 채에 투자하려면 매매가와 전세가 차이가 적은 매물에 투자해야 한다. 이런 매물은 전세가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집값 자체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전세가 비율이 80%라고 하더라도, 10억원짜리 집에 투자하려면 2억원이나 필요하지만, 1억원짜리 집에 투자하려면 2000만원만 있으면 된다.
이 때문에 적은 자금으로 여러 채에 분산하여 투자하는 갭투자는 대부분 저가 주택을 대상으로 한다. 그런데 저가 주택의 경우는 입지가 떨어지는 등 실수요자로부터 외면당한 매물이 대부분이다. 그 매물이 경쟁력이 있다면, 그 지역에 사는 실수요자들이 그 매물을 미리 사지 않았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저가 주택은 고가 주택보다 적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고가 아파트로 저가 아파트 10개 산다
위 표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부터 현재까지 아파트 5분위 배율을 나타낸 표다. 5분위 배율은 상위 20%에 해당하는 고가 아파트 평균 가격을 하위 20%에 해당하는 저가 아파트 평균 가격으로 나눈 지수다. 다시 말해 “고가 아파트를 한 채 팔면 저가 아파트를 몇 채나 살 수 있는가”에 대한 지표라 할 수 있다.
2017년 12월 이전에는 이 지수가 5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6년이 지난 현시점에는 이 지수가 10을 훌쩍 넘는다. 예전에는 고가 아파트 한 채를 팔아도 저가 아파트 다섯 채도 사지 못했지만, 지금은 열 채를 사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입지의 차이에 의한 양극화가 고착되고 있다는 증거라 하겠다.
그러면 간장 종지만 한 그릇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은 어찌하는 것이 좋을까? 대접을 살 만큼 돈을 모은 후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까? 그것은 아니다.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이라도 투자를 해보는 것이 좋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투자에서도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접만 한 그릇에 투자할 여력이 충분한 사람이 그릇 몇 개 가지는 것보다 500개쯤 가지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종지 그릇만 500개 모으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