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만원 → 4780만원.
국내 디지털자산(코인) 거래소 업비트 기준, 올해 1월 1일과 11월 1일 사이 비트코인 종가 변화다. 상승률로 따지면 125%가 넘는 오름세다. 특히 최근 상승폭이 더 두드러진다. 10월 15일 3700만원이었던 비트코인 1개 가격은 불과 2주 만에 1000만원 넘게 올랐다. 비트코인 가격이 4700만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5월 초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비트코인 급등에 따라 코인 투자자 사이에서는 다시금 ‘대세 상승장’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크립토 윈터’라고 불리는 지난 2년간 투자 혹한기가 드디어 끝났다는 전망이 벌써 나온다. 환경도 우호적이다. 초대형 호재인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반감기에 따른 구조적 상승 여력도 충분하다는 평가다. 스탠다드차타드 등 전통 금융을 비롯해 여러 전문가 사이에서 ‘2024년 12만달러설’이 심심찮게 나온다. 한화로 치면 1억6000만원에 달하는 가격이다. 대장주 비트코인이 선전하면서 코인 시장 전체 상승장을 견인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제기된다.
비트코인 상승 ‘3대 요인’
(1) 비트코인 현물 ETF 기대감
운용액만큼 비트코인 의무 보유
최근 비트코인 강세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임박했다는 기대감에서 비롯됐다. ETF 승인이 신규 투자자 수요를 자극하고 막대한 기관 자금 유입으로 향후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ETF는 특정 자산 가격 변화에 수익률을 연동시킨 펀드 상품을 말한다. 예를 들어 금 가격이 오를 때 수익률이 오르도록 설계한 상품은 ‘금 ETF’, 원유 가격 변화에 따라 수익률이 달라지면 ‘원유 ETF’다. 비트코인 ETF는 기초자산을 비트코인으로 설정한 펀드 상품이다.
비트코인 ETF가 상장되면 투자자 유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투자 진입장벽이 확 낮아지는 덕분이다. 코인 계좌가 없는 이도 증권 계좌를 통해 비트코인을 주식처럼 언제든, 또 원하는 만큼 쉽게 사고팔 수 있게 된다. 증권 계좌에 들어 있는 예치금이 언제든 코인 시장으로 유입될 수 있는 판이 깔리는 셈이다. 투자자 보호가 강화된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정부로부터 검증받은 대형 자산운용사가 ETF를 운용하기 때문에 사기를 당하거나 실체가 없는 가짜 자산에 투자할 일이 없다.
개인 투자자 유입만 호재가 아니다. ETF 운용을 희망하는 자산운용사가 막대한 물량의 비트코인을 매수해야 한다는 사실도 가격을 끌어올리는 주요인이다. 비트코인 ETF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해당 자산운용사가 운용액과 맞먹는 기초자산을 의무적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현재 블랙록과 피델리티 등 10개가 넘는 대형 자산운용사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서를 제출해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ETF 승인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산운용사발 대량 매수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비트코인 ETF 승인 전망은 긍정적이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블랙록 비트코인 ETF 상표인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가 미국 증권예탁결제원(DTCC) 목록에 등록되면서 기대감이 더욱 높아졌다. 티커는 IBTC로 결정됐다. 제인스트리트, 점프트레이딩, 허드슨리버트레이딩 같은 대형 마켓메이커(MM)와 유동성 공급을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도 새로 전해졌다.
승인 기대감을 높이는 뉴스가 또 있었다. 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SEC를 상대로 낸 ETF 관련 소송에서 최근 최종 승소했다. 그레이스케일은 비트코인 신탁 상품을 현물 ETF로 전환하는 내용의 심사를 신청했지만 SEC가 반려했고 이에 부당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지난 8월 미국 법원이 그레이스케일 손을 들어주면서 10월 최종 승소했다. 미 법원은 “SEC가 비트코인 선물 ETF는 허용하면서 현물 ETF 신청은 거부한 합리적인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다”고 판시했다.
업계에선 비트코인 ETF가 이르면 12월, 늦어도 내년 3월 중순 이전에 승인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비트코인 ETF가 미국 증시에 출시될 경우 1년 동안 최소 200억달러(약 27조480억원)가 유입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주식 대신 코인…‘디커플링’
(2) 불안한 美 금융 리스크 ‘헤지’
최근 불안한 미국 금융 시장 분위기도 비트코인 상승의 주재료다. 미 국채, 달러 같은 안전자산보다 비트코인이 더 낫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비트코인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이다. 증시 하락과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 비트코인이 각광받는 모습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전쟁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과 국제유가 상승 등 불확실한 대외 환경도 여기 한몫하고 있다. 전통자산으로부터의 ‘회피성 유입’이다.
치솟는 미국 국채 금리가 투자 시장 이탈을 부추긴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 10월 5%를 돌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눈앞에 뒀던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고치다. 국채 금리 상승은 투자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금 조달 비용이 커지면서 기업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이는 곧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익률 면에서도 자본 이탈 가능성이 커진다. 안정적인 이자를 보장하는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주식 투자 매력도가 떨어지는 탓이다.
실제 최근 미국 증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10월 16일부터 26일까지 열흘 동안 가파른 하락이 나타났다. 나스닥종합지수는 7% 빠졌고 S&P500은 5.3%,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도 4.6% 넘게 떨어졌다.
반면 같은 기간 비트코인 가격은 29.6% 뛰었다. 과거 서로 유사한 패턴을 보이던 비트코인 가격과 미국 증시가 정반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요 증시 지표와의 비트코인 상관계수도 떨어졌다. 코인 분석 플랫폼 ‘더블록’에 따르면 10월 31일 기준 비트코인과 나스닥 상관계수는 -0.71, S&P500은 -0.77까지 추락했다. 반면 금과 상관계수는 0.7까지 올랐다. 상관계수는 -1부터 1 사이 숫자로, 1에 가까울수록 둘 사이 상관성이 높다. 0.7부터 1까지는 특히 강한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본다. 투자자가 비트코인을 바라보는 인식이 위험자산에서 안전자산으로 변했다는 방증이다. 한 블록체인 투자사 관계자는 “기존에는 블록체인이나 인공지능(AI) 등 기술주와 비트코인이 뚜렷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기술 테마를 공유하는 위험자산으로 비슷한 움직임을 보였다”며 “하지만 최근 증시와 금융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기술주에서 코인 시장으로 자금이 이동하면서 탈동조화(디커플링) 현상이 두드러지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3) 눈앞으로 다가온 ‘반감기’
그동안 3번 반감기 모두 반등
2024년 4월 예정돼 있는 ‘비트코인 반감기’도 가격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반감기란 비트코인 채굴 보상이 기존 대비 절반으로 줄어드는 시점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은 딱 2100만개가 생성되고 나면 그 후로는 더 이상 채굴이 불가능하게끔 설계됐다. 약 4년에 한 번, 정확히 말하면 블록 21만개가 생겨날 때마다 한 번씩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블록 생성을 위해 풀어야 할 문제 난이도를 2배로 늘리는 방식을 통해서다. 채굴에 필요한 연산력도 2배로 증가한다.
역사적으로 반감기가 도래하면 비트코인 가치가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논리는 단순하다. 수요가 일정한데 공급이 줄어드니, 가격이 오르는 흐름이다. 채굴량이 급격히 줄어들 경우 금 가격이 오르는 상황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실제 반감기 전후로 비트코인 가격이 크게 올랐다. 비트코인은 지금까지 총 3번의 반감기를 거쳤다. 두 번째 반감기였던 2016년 7월 9일, 660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연말 1000달러를 돌파해 2017년 12월(1만9666달러)까지 526일 가까운 상승세를 지속했다. 세 번째 반감기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2020년 5월 11일 8825달러였던 비트코인 가격은 연말 2만3000달러까지 치솟았다. 이후 최고점은 2021년 11월 기록한 6만9000달러다.
물론 리스크도 없잖다. 반감기 이후 채굴 비용은 늘고 수익은 줄어든다는 점에서다. 채굴자 입장에서 보상이 절반으로 감소하면 채굴을 하고자 하는 유인이 떨어진다. 장기적으로는 비트코인이 전체 생태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대형 채굴 업체는 수익성 감소에도 불구하고 채굴을 포기하는 대신 채굴기에 지속 투자하는 모습을 보인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기 위해 사용된 연산 처리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인 ‘해시레이트(Hashrate)’가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채굴 정보 사이트 코인워즈에 따르면 올해 10월 비트코인 해시레이트는 527엑사해시(EH/S)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해나가고 있다. 올해 1월(266EH/S) 대비 두 배 이상 올랐다.
비트코인, 산타랠리 이어갈까
기관 투자 컴백…미국 “오히려 좋아”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궁금한 내용은 최근 비트코인 랠리가 연말 또는 내년까지 지속될 수 있는지다. 예측은 쉽지 않지만 최근 대부분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시장 전망은 낙관적이다.
먼저, 앞서 언급한 비트코인 3대 상승 요인 모두 ‘현재 진행형’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내년 3월까지 승인 여부가 가시화될 예정이고 비트코인과 증시 디커플링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반감기도 아직 오지 않았다. 김세희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 현물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고 내년 4월 예정된 비트코인 반감기에 대한 기대감도 같이 작용해 추세적인 상승 구간으로 판단한다”며 “높은 기대감에 따른 일시적 변동은 생길 수 있지만 추가 하락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큰손’인 기관 투자자 유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는 요인 중 하나다. 기관 투자자 유입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 약정 규모가 크게 늘었다. 올해 10월 CME 미결제 약정 규모는 35억8000만달러에 근접하며 2021년 기록했던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미결제 약정이란 선물·옵션 같은 파생상품 계약에서 아직 결제가 이뤄지지 않은 계약을 의미한다. 미결제 약정 규모가 늘어난다는 것은 시장으로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투자 규모가 큰 기관 투자자는 일반적인 코인 거래소보다는 대부분 CME에서 거래한다.
기관 투자자 유입을 보여주는 또 다른 지표인 ‘코인베이스 프리미엄’과 ‘GBTC 프리미엄’도 오르는 추세다. 코인베이스 프리미엄은 미국 기관 투자자가 주로 이용하는 거래소 ‘코인베이스 프로’ 가격과 타 거래소의 코인 가격 차이를 나타낸 값이다. 프리미엄이 높을수록 미국 투자자 매수 압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크립토퀀트에 따르면 올해 8월 -0.16%에서 10월에는 0.12%까지 올랐다.
GBTC 프리미엄도 상승하고 있다. GBTC는 비트코인을 직접 구매하기 힘든 기관 투자자에게 돈을 받아 비트코인을 대신 구입해 증권 형태로 판매하는 그레이스케일 투자 신탁 상품이다. GBTC 프리미엄이란 GBTC 가격에서 실제 코인 시세에 해당하는 가격을 뺀 값으로, 수치가 높을수록 기관 수요가 다른 주체에 비해 강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코인글라스에 따르면 올해 6월 -44%에 달했던 프리미엄 비율이 현재는 -12%대로 줄었다.
크립토 윈터를 거치며 문제시됐던 ‘비트코인 과매도(Oversold)’가 멈췄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지난 2년간 수많은 코인 관련 기업이 여러 이슈로 파산하면서 어쩔 수 없이 시장에 나온 비트코인이 워낙 많았다. 2022년 5월 루나 사태 원흉이었던 ‘테라’, 글로벌 상위권 코인 거래소 ‘FTX’, 코인 대출 기업 ‘셀시우스’ 등 여러 기업이 줄줄이 파산 사태를 맞이했다. 이들은 유동성 확보를 위해 그동안 보유해온 비트코인을 시장에 전액 매도했고 비트코인 시장 전체가 거대한 하방 압력을 맞이하게 됐다. 주요 크립토 기업의 비트코인 대량 매도와 시장 전체 이미지 추락 탓에 영세한 코인 스타트업 역시 잇달아 도산하면서 다시 비트코인 매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하지만 근래 비트코인 가격이 상승하고 시장이 어느 정도 신뢰를 회복하면서 과매도 현상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주기영 크립토퀀트 대표는 “2022년 이후 파산 기업 비트코인 매도에 따른 ‘전염 리스크’로 시장이 크게 위축됐다”며 “하지만 2023년 하반기 들어 점차 안정화되면서 시장에 과매도되는 비트코인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을 띄우려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최근 금 가격 급등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는 주장이다. 금 가격이 오르면 비슷한 안전자산인 미 국채와 달러 선호가 줄어드는데, 금으로 향하는 유동성을 비트코인으로 유도하는 편이 미국 입장에서는 더 낫다는 논리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최근 금융 시장 불안으로 중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금 매입을 크게 늘렸다. 외환보유고에서 미 국채나 달러 대신 금을 선호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며 “금보다는 각국 외환보유와 무관한 비트코인으로 유동성이 몰려야 그나마 미 국채와 달러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