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험대 오르는 인텔 패키징 기술, TSMC·삼성 구도에 영향
신규 CPU 메테오레이크 성공 여부에 이목 집중
AI 칩 ‘가우디3’로 엔비디아에 도전장, 2나노 개발도 우위 선점
반도체 시장의 황제로 군림하다 2010년대 중반 이후 설계, 제조, 연구개발 경쟁력이 급격하게 무너지며 ‘과거의 유물’로 전락했던 인텔이 반도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올해는 주력 사업인 중앙처리장치(CPU)뿐만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까지 진입을 선언하면서 업계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인텔이 과거 반도체 기술 트렌드를 이끌던 시절의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아직 장담할 수는 없지만, 오랜 기간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왔던 투자자들의 마음을 바꾼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 한 해 주가는 무려 91% 급등해 20년 만에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인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혁신과 변화가 심상치 않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전설적인 엔지니어 출신으로 VM웨어 최고경영자(CEO)를 거쳐 지난 2021년 인텔로 다시 돌아온 팻 겔싱어 CEO가 이끄는 인텔이 일으킬 변화와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포진한 메모리, 파운드리 시장에 미칠 영향을 진단해 보겠습니다.
포베로스, EMIB 기술로 파운드리 시장 판도 흔든다
올해 인텔의 부활 여부를 가늠할 첫 키워드는 파운드리 시장 진입을 위해 내놓은 첨단 패키징 기술의 성공 여부입니다. 인텔은 CPU 설계, 제조뿐만 아니라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한 패키징 기술을 수십 년간 축적해 온 기업입니다. 이를 과시하듯 지난해 8월 전 세계 미디어와 고객사들을 말레이시아 페낭 공장으로 초청해 전체 패키징 라인을 전면 공개하는 이례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올해 시장의 평가대에 오르게 되는 인텔 패키징 기술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이론적으로 가장 진보한 형태의 패키징 기술로 알려진 포베로스, 그리고 TSMC의 2.5D 패키징 기술인 CoWoS(Chip On Wafer on Substrate)를 더 효율적으로 개선한 멀티 다이 브릿지(EMIB, 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 패키징 공법입니다. 두 기술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할 경우 파운드리 시장 1, 2위인 TSMC와 삼성전자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릴 수 있습니다.
현재 시장 주류로 자리 잡고 있는 TSMC의 2.5D 패키징은 서로 다른 종류의 칩을 하나의 패키지로 묶기 위해 ‘인터포저’라는 별도의 칩을 깔아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이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하면 칩 위에 칩을 쌓는 식입니다. 기존 PCB 기판 위에서는 데이터 전송 속도가 크게 저하되기 때문에 웨이퍼를 사용한 것입니다. 이 기술도 과거 인텔이 먼저 개발했지만 상업성, 생산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폐기한 것을 TSMC가 카피해 개량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텔은 TSMC의 2.5D 패키징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여러 종류의 칩을 다리(bridge)로 이어 붙이는 멀티 다이 브릿지(EMIB, Embedded Multi-Die Interconnect Bridge) 기술을 상용화했습니다. 이 기술은 지난 2017년 처음 인텔의 일부 칩에 적용됐으며 올해는 더 진보한 형태로 양산을 안정화할 예정입니다.
여기에 패키징 기술의 ‘끝판왕’격인 포베로스는 수직으로 쌓아 올린 두 개의 프로세서를 쌓아올리고 하나의 칩처럼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3D 패키징 기술입니다. 둥근 돌기 모양 범프나 구리 기둥 모양 범프 없이 구리와 구리를 플라즈마 기술을 활용해 공유결합(covalent bond)해서 칩 영역 간격을 10㎛ 이하로 줄일 수 있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속도도 빠르고 전력 효율도 높아집니다.
두 기술이 적용된 인텔의 신규 CPU ‘메테오레이크’가 올해 시장에서 기대만큼의 퍼포먼스를 보일 경우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인텔의 입지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인텔은 설계부터 제조, 패키징, 테스트 등 모든 작업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반도체 기업이라는 강점이 있습니다. TSMC에 칩 제조를 의뢰하는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주문이 같은 영토에 있는 인텔로 향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인텔의 도약은 TSMC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최선단 2나노 공정, AI 칩 시장서도 존재감 드러낸다
차세대 공정 기술력 경쟁의 분수령인 2나노에서도 인텔의 도약이 시장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인텔은 TSMC·삼성전자보다 이른 2나노미터(㎚·1㎚=10억 분의 1m) 공정 양산을 공언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인텔은 지난해 12월 22일 네덜란드 ASML로부터 최첨단 반도체 양산에 필요한 하이 NA 극자외선(EUV) 장비를 가장 먼저 공급받기 시작했죠. 삼성과 TSMC는 2025년에야 이 장비를 납품받을 것이 유력합니다. 미래 반도체 수주 경쟁에서 인텔이 유리한 고지를 먼저 확보한 셈입니다.
엔비디아가 장악하고 있는 AI 반도체 시장에서도 인텔의 진입이 본격화될 예정입니다. 대규모언어모델(LLM) 시장을 겨냥해 내놓은 ‘가우디3′는 대규모언어모델(LLM) 처리에 특화한 칩입니다. 그동안 AI 반도체 시장이 엔비디아의 독점 구도였다면 올해부터는 인텔, AMD가 잇따라 가세하며 3파전 양상에 돌입하게 되는 셈입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메테오레이크에 적용된 ‘인텔4′ 공정은 인텔이 처음으로 EUV를 사용해 완성시킨 공정이기 때문에 인텔이 외치는 제조 기술력 강화 로드맵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며 “인텔 내부적으로는 지난 10여년간 인텔이 만든 최고의 공정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