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DT라는 암호화폐(코인)가 있다. ‘유에스디티’라고 읽는 그 이름은 ‘유에스디(USD)’, 곧 미국 달러에서 왔다. USDT 1개는 1달러의 가치에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T는 발행사인 테더(Tether)에서 딴 글자다.
최근 한국 코인 업계는 USDT의 국내 거래가 가능해졌다는 소식에 살짝 달아올랐다. 2023년 12월 말에는 거래 지원을 개시한 빗썸이 업비트를 제치고 국내 거래량 1위를 탈환했는데, USDT가 그 배경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USDT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답을 찾으려면 ‘당신은 암호화폐를 어떻게 삽니까?’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선 코인을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이 조금 시시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많은 이들의 답변은 업비트, 빗썸 같은 고유명사가 될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일어난 변화이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른바 ‘거래소’라 불리는 이들 서비스에 많은 기능이 통합되고 발전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국경 넘나드는 코인 시장, USDT 매력 높아
이를테면 코인을 어디에 보관하는지나 코인의 주인이 누구인지 등의 질문은 굉장히 민감한 문제다. 코인은 코드이므로 저장이 굉장히 쉽다. 형식상으로는 파일을 저장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USB 저장장치에 보관할 수도 있고, 어느 웹사이트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로그인해서 저장할 수도 있다.
문제는 보관이 너무 쉽기에 악용 가능성도 크다는 점이다. 누군가 나쁜 마음을 먹고 조세 회피, 자금 세탁, 테러 지원 등 자금 은닉을 꾀한다면, 코인은 매우 위험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수십~수백억대의 막대한 자금이라 해도 클릭 몇 번으로 또는 USB 저장장치만으로 어디론가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몇 해 전부터 G20과 유엔 등 국제사회는 코인의 출처와 관련해서 각국 금융 당국과 관련 기관들에 ‘누군지 알아야 한다’(Know Your Customer, KYC)고 강하게 주문했다. 한국 같은 국제사회의 모범생들은 코인 거래에서 KYC를 엄격히 적용하는 시스템을 짧은 시간 안에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KYC 기능을 제대로 갖춘 ‘거래소’ 몇 곳이 코인의 매매, 전송, 보관 등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이런 환경에서는 코인을 어떻게 사느냐는 질문은 순진하고 괜한 우문(愚問)이 되어버린다. 거래소가 모든 서비스를 갖췄으니 고객은 거기서 코인을 사면 된다. 심지어 금융 당국은 KYC 기능을 갖춘 거래소만 한정해서 법정화폐(원화)와 코인의 매매를 허용했다. 거래소 아닌 곳에서 코인을 거래할 여지도 사실상 쪼그라든 셈이다.하지만 그게 전부일까? 코인은 여전히 국경을 손쉽게 넘나든다. 무엇보다 코인 거래의 모든 목적이 나쁜 것은 아니다. 조금 시계를 돌려보자.
러시아를 오가는 중국의 무역상들은 거래 대금 송금을 위해 코인을 이용하곤 했다. 2019년 언론 보도를 보면, 이들은 중국에서 잡화를 싣고 와서 모스크바의 쇼핑몰에 판매한 뒤 루블화 현금으로 받은 거래 대금을 코인으로 ‘환전’해 중국으로 보냈다. 장외거래(OTC)로 불리는 코인 환전소가 모스크바에서 일단 루블화와 코인을 바꿔줬다.
중국에도 역시 위안화와 코인을 매매할 수 있는 거래소 또는 환전소가 있었다. 무역상들이 모스크바에서 보낸 코인을 중국에서 위안화로 출금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무역상들이 코인을 이용한 것은 보관의 용이성 문제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중국 당국이 외환 관리를 위해 개인의 환전 한도를 연간 5만 달러로 제한하기 때문이었다. 당시 모스크바의 중국 무역상들이 하루에 코인으로 환전하는 규모가 1000만~3000만 달러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2020년 코로나19 확산과 중국의 대대적인 암호화폐 탄압 이후 이 같은 현상은 아마도 현저히 줄었을 것이다.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도 있다. 2023년 말 기준 해외에서 일하는 필리핀 출신 노동자 수는 20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자금은 한 달 20억~3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이들에게 은행 송금은 불편하다. 시간을 맞춰야 하고 은행을 오가야 하며 여러 단계의 수수료를 내야 한다. 필리핀 현지에서 돈을 받아야 할 가족이 반드시 은행 가까운 곳에 산다는 보장도 없다.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이 코인이다. 핸드폰 앱으로 뚝딱 해결할 수 있는 코인 송금은 이들에게 ‘매직’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나라에서 코인을 직접 구매해서 전송하기도 하지만, 코인을 이용해 돈을 부쳐주는 서비스가 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미 오래된 현실이다.
이제 느껴지는가? 위에 나온 러시아의 중국 무역상과 필리핀 출신 이주노동자들은 코인을 어떻게 사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우리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블록체인·암호화폐 전문 글로벌 매체인 ‘비인크립토’는 현재 16개 언어로 발행한다. 꽤 오래 전부터 각 언어판에서 ‘비트코인 구매’, ‘이더리움 구매’, ‘솔라나 구매’ 등 코인을 어떻게 사느냐는 주제로 튜토리얼 성격의 글을 올리고 있는데 상당한 트래픽이 나오는 것은 세계적으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가격 변동성 낮고 달러 연동돼 송금에 적합
다시 USDT로 돌아오자. 가격이 달러에 고정된 USDT는 위와 같은 송금에 아주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하루에만 적어도 몇 %, 많게는 몇십 %씩 가격이 변하는 다른 코인보다는 보내는 입장에서도 받는 입장에서도 훨씬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코인은 안정적(stable)이라고 해서 스테이블코인이라 부르는데, USDT는 그중에서도 세계적으로 유통 규모가 가장 큰 스테이블코인이다.
비단 송금 말고도 현금의 구실을 대신한다. 가령 서로 다른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의 가격 차이가 발생했을 때 그 차액을 이용한 재정거래(arbitrage)를 하려면, 싼 곳에서 현금으로 비트코인을 사고, 비싼 곳에서 비트코인을 팔아 현금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앞서 한국의 환경에서 봤듯이 현금과 코인의 교환은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니 현금 대신 USDT를 이용한다. 같은 맥락에서 국내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투자 상품 매매를 위해 USDT를 이용할 수도 있다. 결국 USDT는 투자자들에게 코인의 쓰임새를 한층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빗썸이 USDT 거래를 지원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필요시 원화로 USDT를 사고, 거꾸로 USDT를 원화로 바꿀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다. 이에 이미 해외거래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는 ‘상급’ 투자자들이 거래량 증가로 화답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인 것 같다.
이런 매매를 하는 투자자에게 ‘코인을 어떻게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변은 그리 시시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USDT로 보관하고 있다가 시장을 보면서 투자도 하고 출금도 하고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