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
이어서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경기진작을 위한 부동산 규제완화 정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에 이어 유럽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주택시장은 물론 국내 경기 자체가 장기침체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예상대로 규제를 풀며 시장 부양에 나섰다. 임기 시작 직후 내놓은 2013년 4·1대책에는 신규분양 주택 또는 미분양 주택을 구입하면 5년간 양도소득세를 면제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임대사업자에 대해 취등록세, 양도세 감면 혜택을 주기도 했다. 다주택자가 움직여야 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아울러 생애최초주택 구입 시 취득세를 면제하는 등 전세수요를 매매수요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도 나왔다. 전세자금 대출한도도 보증금의 70%까지 크게 늘렸다. 이 정책은 전셋값 급등에 대한 대책이었지만 향후 ‘전세의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대책은 2014년 ‘초이노믹스’가 시작되며 나왔다.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가 경기 회복을 위해 부동산 시장 부양에 나서면서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대폭 높였기 때문이다. 2014년 7월 발표된 이 정책은 LTV와 DTI 한도를 각각 70%, 60%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때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한다”는 비판도 나왔다. 집값이 수년째 ‘요지부동’하면서 하우스 푸어 문제가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명 부동산 3법이 나온 것도 이때다. 분양권 전매 허용, 분양가상한제 폐지 또는 완화가 핵심 내용이었다. 아울러 한 명이 3곳의 재건축 조합원이 돼 분양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실상 1가구 3주택 허용 등의 내용까지 담겨 있었다. 당은 달랐지만 김대중 정부의 부양책과 유사하다 해서 ‘어게인 김대중 정부’라고 박근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책에는 다른 정부와 다른 점이 있었다. 대규모 신규택지를 지정하지 않았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주택공급이 부족하지 않았다. 인천 검단과 경기 동탄2 등 수도권 2기 신도시를 비롯해 노무현 정부 때 계획했던 공급물량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2015년 주택도시보증공사가 보증한 분양 주택 수는 36만4000채에 달했다. 신규 택지 공급이 없다보니 공공분양 물량과 공공택지 공급이 축소됐다. 이 공급 축소는 문재인 정부까지 이어지며 서울 수도권 아파트값 폭등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부양책과 향후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 움츠렸던 수요의 회복 등이 맞물리며 시장이 돌아서기 시작했다. 장기 상승장의 초입 국면으로 들어섰다. 2000년대 주택가격 상승과 달랐던 점은 서울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지방부터 수도권으로 집값 상승세가 확산됐다는 점이다. 규제완화 효과였다. 2010년부터 2015년까지 5대 지방광역시 아파트 가격 상승률은 수도권을 웃돌았다. 이어 집값 상승세가 수도권으로 옮겨 붙으며 2016년부터 지방 시세를 추월하기 시작했다. 2014년 1.09%로 소폭 상승 전환한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5년 5.56% 오르며 본격적인 상승장에 진입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도 아파트 가격 상승세는 부담이었다. 2016년 8월 ‘가계부채 관리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투기과열지역 내 분양권 전매제한 등 규제정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해 국정농단 의혹이 제기돼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탄핵결정을 내리면서 공은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된다.
“안 사는 집 파시라”던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이미 상승기에 진입한 상태였다.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집값 잡기’라는 과제를 안고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을 사회수석으로 임명했다. 시장의 흐름을 거꾸로 돌려놓겠다는 의지였다. 이에 따라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이 반복될 것이라는 정서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시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2017년 임기가 시작된 직후 연달아 나온 6·19대책과 8·2대책은 노무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압축판’이었다. 특히 다주택자에 대한 집중적인 규제 의지가 확연해 보였다.
8·2대책에 따라 강남 3구와 용산, 성동, 마포, 양천, 영등포 등 11개 자치구, 세종시를 투기지역으로 지정됐다. 나머지 서울 자치구와 과천은 투기과열지구, 경기도 성남, 하남, 고양, 광명, 남양주, 동탄2신도시와 부산 주요 지역은 조정대상지역이 됐다. 투기과열지구 내 분양권 전매제한, 조합원 지위 양도 제한, LTV와 DTI 40% 적용,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등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하지만 12월 말 시장에 잘못된 사인을 주는 정책이 튀어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다주택자가 임대주택사업자로 등록하면 세제혜택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임대주택을 늘리기 위해 마련한 대안이었다. 이 정책은 초기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심각한 허점으로 이어졌다.다주택자들이 집을 팔게 해야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당사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이제 집을 안 팔아도 되겠구나”라는 신호로 읽었고 너도나도 갭투자에 나서며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이 정책이 나온 후 2년간 등록된 임대주택 수는 98만 채에서 150만 채로 급증했고 임대사업자 역시 26만 명에서 50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집값이 안 잡히자 2018년엔 9·13 부동산 대책을 통해 종합부동산세 세율을 최대 3.2%까지 확대하게 됐다. 임대사업자 등록을 유도했던 기존 정책 방향 또한 대폭 변경됐다. 임대주택 등록이 주택 투기수요 및 다주택자에 대한 탈출구가 될 수 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었다. 조정대상지역 내 신규 취득한 임대주택에 대해 종합부동산세에 합산 과세하고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도 포함시켰다.
하지만 한번 상승으로 방향을 잡은 시장은 쉽게 꺾이지 않았다. 2018년 말에는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인천 계양이, 2019년에는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지구가 3기 신도시 대상지로 발표됐다. 서울 주택 수요를 분산하고 주택 매매시세를 잡기 위해 사전청약이라는 제도도 도입됐다. 기존에 부족한 수도권 교통망 확대 차원의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노선 계획도 나왔다.
김현미 장관은 부동산 대책이 나올 때마다 “수도권 주택 공급량은 수요량을 상회한다”, “살지 않는 집은 파시라” 등의 어록을 탄생시켰다. 1기 신도시 및 2기 신도시 입주민들은 3기 신도시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기존 신도시보다 서울 접근성이 높은 입지에 주택이 대량 공급되면 1기와 2기 신도시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때 집값이 안정을 찾는 듯했다. 2018년 13.56% 급등했던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2019년 2.91% 상승에 그쳤다. 하지만 이는 다가오는 유동성 시대의 서막에 불과했다. 2020년 초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풀린 유동성은 부동산 시세를 더욱 끌어 올렸다.
정부는 성남 분당과 대구 수성 등을 투기과열지구로 추가 지정하고 취득세 중과, 규제지역 주택담보대출에 대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적용, 민간택지에 대한 분양가상한제 등 규제를 이어갔지만 눈에 띄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 대책 직후 잠시 주춤하던 집값은 다시 상승세를 이어간 것이다.
2020년 10월 서초구 반포동 소재 신축 아파트 ‘아크로리버파크’ 전용면적 84㎡ 타입은 34억원에 실거래되며 3.3㎡(평)당 1억원 시대를 열었다. 신반포1차 아파트를 재건축해 2016년 입주한 아크로리버파크는 한강 조망 특화단지로 유명세를 탔다. 성동구 성수동 트리마제도 유명인이 거주하는 고급 단지로 인기를 끄는 등 새로운 상승기는 서울 한강변이 이끌었다.
문재인 정부 정책은 노무현 정부 정책에서 비롯한 만큼 지적되는 내용 역시 비슷하다. 수요 억제와 세금을 통한 부동산 규제가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정부 모두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며 정책 피로감을 유발했다. 반면 공급대책은 집권 2년 만에 나왔다. 인천 계양과 하남 교산은 2022년, 부천 대장과 남양주 왕숙은 2023년이 돼서야 토지보상을 마쳤다.
더구나 문재인 정부 당시 시장은 ‘뭐든 오른다’는 특성을 보였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지방 부동산이 상대적으로 소외돼 ‘서울 집중 현상’이 부각됐던 것과 달리 지방 집값이 수도권을 밀어 올린 데 이어 수도권이 오르면서 지방이 따라 오르는 ‘순환매’ 장세가 이어졌다. 부동산 시세가 정점이던 2021년에는 아파트의 대체재이자 비(非)규제 대상이었던 오피스텔과 생활형숙박시설(레지던스)까지 웃돈이 붙었으며 취득세 중과를 피한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연립까지 투자수요가 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