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내놓는 애플의 야심작 ‘비전 프로’가 2월 2일 출시됐다. 지난해 6월 애플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공개된 비전 프로는 1월 19일 사전 예약을 통해 이미 20만 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맥(Mac)이 개인용 컴퓨터를, 아이폰(iPhone)이 모바일 컴퓨팅의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비전 프로(Vision Pro)는 공간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람들의 기대 역시 기존 애플이 선보였던 맥북, 아이폰, 에어팟, 애플워치의 성공을 보며 애플이 내놓을 새로운 기기에 궁금증과 기대, 그리고 그동안 수많은 VR(Virtual Reality)과 MR(Mixed Reality)의 실패를 답습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동시에 표출하고 있다. 과연 비전 프로는 팀 쿡의 기대처럼 새로운 컴퓨팅 세상을 제공하며 제2의 아이폰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AR, VR, MR…
비전 프로는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와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동시에 제공해줄 수 있는 혼합현실(Mixed Reality)에 가까운 기기다. 증강현실(AR)은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세계에 가상의 이미지나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미 우리 생활에 상당 부분 적용돼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최근 출시되는 차량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나오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있다. 이러한 헤드업디스플레이는 실제 주행 중인 도로 환경에 운전자에게 필요한 주행속도, 도로 표지부터 내비게이션 정보 및 실제 주행을 해야 할 차선 정보까지 다양한 가상의 정보와 이미지를 현실세계에 입혀 제공하고 있다.
가상현실(VR)은 실제의 현실이 아닌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새로운 현실에 사용자가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으로 사용자의 몰입감을 위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라는 장비를 머리에 쓰고 사용한다. 대표적으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이나 과거 오큘러스라 불렸던 메타와 같이 게임을 위한 기기로 제공되고 있다.
혼합현실(MR)은 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현실로 정의될 수 있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혼합현실은 1994년 미국의 과학자 폴 밀그램의 논문 ‘증강현실’에서 언급한 용어로 증강현실에 더해 증강가상이라는 개념이 추가된 것으로 가상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세계의 객체를 입힌 것으로 영상 촬영에서의 크로마키 기법이 이러한 증강가상의 대표적 사례이다.
이러한 실제 존재하는 현실에 어떠한 추가 정보를 입히거나 거꾸로 가상의 세계에 현실에 존재하는 객체를 입혀 추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는 시도는 지금까지 많았다. 증강현실을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한때 유행했지만 실제 효용성 있는 서비스와 콘텐츠의 부재로 지금은 일부에만 적용되고 있다.
가상현실을 활용한 서비스 역시 유사한 상황이다. 오큘러스에서 시작된 지금의 메타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VR은 그나마 게임이라는 콘텐츠를 활용하여 명백을 유지하고 있지만 HTC 바이브와 같은 제품들은 소수의 특정 분야에서만 일부 활용될 뿐 초기 제품이 나오고 일반 대중이 편하게 사용할 만큼 대중화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여기에 비전 프로와 유사한 공간컴퓨팅을 표방하며 출시된 제품도 있다.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다. 지금은 홀로렌즈2까지 출시되어 있고 BMW나 벤츠, GE 등 상당수의 기업에서 생산성 향상이나 교육용 등으로 활용 중이다.
하드웨어 한계를 극복하라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은 대부분 별도의 디바이스를 필요로 한다. 최초 증강현실이라 할 수 있는 헤드업디스플레이(HUD)의 경우는 전투기 조종사의 헬멧에 탑재가 되었다. 그리고 이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모바일의 카메라와 디스플레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출시되었다. 가상현실도 비슷하다. 몰입감을 위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라는 육중한 장비가 등장했고 이를 머리에 뒤집어 쓰고 다양한 콘텐츠를 즐겼다.
한계는 분명했다. 증강현실의 경우 일방적 정보 제공 수준의 활용도는 사용자들에게 큰 매력을 어필하지 못했다. 어릴적 보던 드래곤볼에 나왔던 상대방의 전투력을 측정하는 스카우터처럼 휴대성이 좋은 기기도 없었고 대중들이 스마트폰을 수시로 꺼내들고 현실세계에 추가 정보를 확인할 만큼 증강현실이 빈번하게 필요하지도 않았다. 가상현실의 상황은 조금 더 심각했다. 지금까지 출시된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는 몇 가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먼저 하드웨어 측면을 얘기해 보면 가장 먼저 디스플레이를 들 수 있다. 기존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의 디스플레이는 콘텐츠를 표출하기 위한 다양한 디스플레이를 사용하였다. 초기 LCD부터 비전 프로에 적용된 마이크로 LED까지 디스플레이의 발전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됐다.
사실 디스플레이 이슈는 가상현실 기기 보급에 치명적이었다. 이번에 비전 프로에 적용된 마이크로 LED의 해상도는 4K 디스플레이 2개를 합쳐 2300만 화소를 제공한다. 하지만 과거 기기들에는 이보다 훨씬 떨어지는 해상도의 디스플레이가 적용됐고 이는 콘텐츠를 볼 때 눈앞의 화면에 픽셀이 보이는 문제를 발생시켰다.
또한 기기의 무게 문제 역시 심각했다. 단시간 기기를 머리에 쓰고 있으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1시간 이상 상당한 무게의 기기를 계속 착용하고 있기엔 머리나 목에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이보다 더 큰 이슈는 발열과 어지러움이다. 디스플레이에서 방출되는 열은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를 장시간 착용하는 데 큰 방해 요소였고 프로세스와 디스플레이의 지연에 따른 어지러움은 사용자들의 접근을 막는 장벽이었다. 여기에 비싼 가격은 마지막 카운터 펀치의 역할을 했다.
애플이 하면 다르다?
애플이 비전 프로를 발표할 때 사람들의 기대는 동일했다. 사실 이미 나와 있는 기술들을 잘 버무려 발표했고 하드웨어의 사양이나 여러 기능들은 기존 기기의 수준이거나 상상했던 수준이었다. 사실 이렇게 보면 실패작이다. 기존에 출시된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나 메타 퀘스트,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VR보다 조금 더 향상된 업그레이드 수준의 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기대는 하드웨어의 성능 향상보다 다른 곳에 있는 거 같다. 바로 비전 프로라는 하드웨어에 기반한 새로운 생태계의 조성, 그리고 이를 활용한 공간 컴퓨팅의 가능성이다. 이미 우리는 공상과학 영화에서 미래의 모습 중 가장 큰 변화로 혼합현실을 보아왔다. 필요한 정보가 눈앞에 나타나고 이러한 정보와의 인터랙션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찾고 만들어내는 모습들은 이제 미래의 생활을 상상할 때 빠지지 않는 기본 요소가 됐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 컴퓨팅이라는 혼합현실의 세계를 애플의 비전 프로가 열어주지 않을까 기대를 하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발표할 때 이미 세상은 노키아의 스마트폰이나 블랙베리, 삼성의 스마트폰 등이 판매되고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용자 편의성을 위해 터치 스크린을 적용했고 물리적 키보드를 없앴고 사용할 수 있는 화면을 늘렸으며 이를 활용하기 위하 앱스토어라는 생태계를 만든 건 애플이 처음이었다. 컴퓨터처럼 스마트폰에 개인이 각자 필요한 앱을 깔고 지울 수 있는 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잡스가 최초 아이폰을 발표했을 때 기존의 전화, 그리고 휴대용 음악 저장 장치인 아이팟, 이 둘을 합친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사용자들에게 전화기이자 멀티미디어 기기로서의 지향점을 보여줬던 것처럼 비전 프로 역시 단순한 정보 제공 기기나 게임과 같은 멀티미디어만을 위한 기기가 아닌 공간 컴퓨팅이라는 새로운 비전을 전문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비전 프로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