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와 증시가 강해도 워낙 강하다. 경기는 ‘노 랜딩’이란 신조어가 나올 만큼 2%대의 성장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2023년 하반기 성장률은 4%를 넘어 선진국 중에서 가장 높다. 증시는 시가총액이 전 세계의 50%에 근접할 만큼 빅테크 종목의 주도로 1990년대 후반의 ‘골디락스’ 장세가 재현되고 있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란
3년 전 조 바이든 정부가 출범할 때만 하더라도 직전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남겨놓은 난제로 경기와 증시가 모두 녹록지 않았다. 대외적으로는 중국과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2027년에는 추월당할 것이라는 예상까지 나왔다. 대내적으로는 미국 의회가 트럼프 키즈에게 점령당할 정도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한 나라의 비상상황과 같은 복잡한 현실을 푸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때문에 특정 경제이론에 의존하기보다 당면한 현안을 극복하는데 기여했던 종전의 정책처방을 참고로 하는 실증적 방법이 활용된다. 바이든 정부의 실질적인 경제 컨트롤타워인 재닛 옐런 장관이 들고 나온 것이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다.
1999년 4월 예일대 동문회에서 처음으로 언급해서 알려지기 시작한 이 패러다임은 1960년대 존 F 케네디와 린든 B 존슨 정부 때 실행됐던 경제정책을 설계하는 데 핵심 역할을 담당했던 제임스 토빈, 로버트 솔로, 아서 오쿤, 케네스 애로 등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월리엄 노드하우스, 로버트 실러 그리고 재닛 옐런이 뒤를 잇고 있다.
전체적인 기조는 경기부양 등과 같은 단기과제는 케인지언 이론을 선호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 기반 등과 같은 장기과제는 신고전학파 이론을 받아들여 해결한 독특한 정책 처방 패키지이다. 즉 단기과제는 총수요와 총공급 곡선으로 이해하고, 장기과제는 토빈과 솔로 모델을 선택했다.
경제정책은 당면한 현안에 따라 유연하게 운용했다. 재정정책은 경기부양과 위기극복을 위해 재정 건전화가 뒷전으로 물러나는 것을 용인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통제권에 들어오면 국가채무를 줄여 재정 건전화를 도모하는 쪽으로 우선순위가 이동됐다. 통화정책도 ‘준칙(monetary rule)’대로 운용되지는 않았다.
최종 목표인 장기성장과 완전고용을 위해서는 물적자본, 인적자본, 연구개발(R&D)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강조했다. 정부는 친기업 정책을 추진해 이윤이 높아질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권고했다. 세제도 투자세액공제제도를 도입하고 소비세율을 높여 저축과 투자가 함께 늘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봤다.
실증적인 경제정책 운용의 틀인 만큼 이 패러다임은 옐런 장관이 주도하면서 변화를 주었다. Fed에서 잔뼈가 굵었던 점을 고려하면 통화정책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겠느냐는 선입견과 달리 재정정책을 더 중시했다. 학문적으로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통화론자보다 케인지언에 가깝다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주 책임인 재정정책에 대한 옐런 장관의 시각은 종전보다 더 대담하다. 코비드19와 같은 비상사태 때는 국가채무 우려와 관계없이 재정지출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평상시에도 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감세 등을 추진해 민간의 기업가 정신과 경제하고자 하는 의욕을 고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2023년 하반기 이후에는 곤경에 처한 Fed와 제룸 파월 의장까지 구해내고 있다. 2023년 7월 이후 기준금리를 50bp(1bp=0.01%p) 올렸지만 10년물 금리가 두 배 이상 뛰어오르자 국채발행 물량을 조정해 안정시켰다. 지난 1월 중순 이후에도 파월 의장의 라스트 마일 부작용(볼커의 실수) 우려로 10년물 금리가 다시 오르자 국채발행 물량을 조절했다.
미국 경제와 증시, 왜 강한가부문별 정책을 단순생산함수(Y=f(L, K, 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를 이용해 뜯어보면 가장 우려됐던 인구절벽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이민대책을 추진했다. 낮은 자본장비율(K/L)은 리쇼어링 정책으로 대처했다. 총요소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개조해 민간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했다.
경제패권 확보와 관련해 첨단기술 육성책이 이번에도 주효했다.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막강한 제조업에 밀릴 것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인터넷으로 대변되는 3차 산업혁명으로 오히려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2020년대 들어 중국에 경제패권을 넘겨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M7(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애플·알파벳·엔비디아·메타·테슬라)이 주도가 된 6차 산업혁명으로 중국과의 격차를 30년 이상 벌려 놓았다.
미국의 성장동력은 달라졌다. 로버트 솔로 성장이론에 특정국의 성장동인을 생산요소와 생산성으로 양분화시켜 요인분석을 해보면 중국 경제는 아직도 생산요소 기여도가 높은 외연적 성장경로에 있으나 미국 경제는 생산성 기여도가 더 높아지는 2단계 내연적 성장경로로 이동되고 있다. 미국의 노동과 자본 생산성은 중국의 3배 이상으로 높게 추정된다.증시 정책을 공화당의 전통 이상으로 중시한 것도 옐런 장관이 주도하는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이 종전과 다른 점이다. 기업이 자금조달 창구로 증시를 최우선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줬다. 법인세, 상속세 등을 감면해 기업가 정신과 이윤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증시 관련 세제정책도 대폭 정비했다.
포이즌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등을 도입해 경영권을 보호해주는 대신 자사주 매입과 소각, 주식배당 등을 적극 권장했다. 자사주를 활용한 합병비율의 왜곡, 오너 등 지배주주 사익을 위한 부(富)의 이전행위인 터널링 등 오너를 비롯한 지배주주의 전횡과 상장사 임직원의 금융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킬 수 있는 경쟁정책을 대폭 강화했다.
개인 투자자도 건전한 재산증식 수단으로 주식을 선호할 수 있도록 보호장치를 마련해줬다. 소득세, 양도세, 거래세 등 주식 관련 세제를 단일화시키면서 세율도 대폭 내렸다. 공매도를 비롯한 모든 주식과 주식 관련 상품 거래 때 외국인 자금, 기관으로부터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개인 투자자 간 연대 등 주주행동주의 활동을 보장해줬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경제 3면 등가법칙(생산=분배=지출)상 분배의 주 수단을 임금과 함께 주주환원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는 점이다. 미국의 주주환원율은 92%에 달한다. 기업이 이익이 나면 모두 주주에게 돌려준다는 의미다. 선진국 평균 68%, 신흥국 평균 37%, 중국 31%뿐만 아니라 한국 29%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예일 거시경제 패러다임을 토대로 경제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와 1990년대 미국 경제는 전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토빈 교수가 케네디 정부에 정책 자문했던 1961년 이후 106개월 동안 확장 국면이 이어졌다. 1990년대에는 예일대 교수들이 다시 빌 클린턴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확장 국면이 2001년 3월까지 120개월 동안 지속됐다. 과연 이번에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경제적으로 저성장 고착화 우려가 제기되고 증시 면에서는 코리아 패싱, 서든 스톱 등에 시달리는 우리로서는 미국 경제와 증시가 왜 강한가를 면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상징인 영란은행이 마크 커니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영입해 위기 상황을 극복했듯이 재닛 옐런 장관을 초청해 당면한 현안을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 국민의 솔직한 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