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블록체인 산업에서는 인공지능(AI) 활용 프로젝트들이 매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2024년에 들어서며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필두로 암호화폐 시장 전체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AI 관련 암호화폐의 가격 상승은 다른 섹터를 압도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 2월 17일 챗GPT를 개발한 오픈A에서 비디오 생성 AI인 소라(Sora)를 발표한 이후 AI 관련 암호화폐의 가격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후 암호화폐 시장에는 본격적인 ‘AI 열풍’이 불기 시작하였으며 AI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여겨져 왔던 프로젝트들도 AI 서비스 출시를 암시하면서 토큰 가격이 급등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났다.
AI 관련 프로젝트들이 소라 출시 이후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여 폭발적인 가격 상승을 기록하였지만 AI와 블록체인을 접목시키기 위한 시도는 그 이전부터 꾸준히 이어져왔다. 이번 글에서는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이 이루어지고 있는 분야와 각 분야별로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살펴보고자 한다.
영지식 증명, 탈중앙화 인격 증명 시스템 구축
영지식 증명(ZKP)은 암호학에서 누군가가 상대방에게 어떠한 사실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해당 사실의 참, 거짓 여부를 제외한 그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이를 증명하는 방법을 의미한다. 영지식 증명을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로는 디지털 ID 솔루션인 월드코인(Worldcoin)이 존재한다.
월드코인은 챗GPT의 창립자 샘 올트먼이 개발한 프로젝트로, 기존의 ID 솔루션이 소수의 중앙화된 주체의 보안에 의존함에 따라 개인정보 누출 위험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월드코인은 이와 같은 인격 증명의 중앙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시된 서비스로, 영지식 증명을 통해 사용자는 자신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고도 개인의 고유성과 인간성을 증명할 수 있다.
월드코인에서 사용자의 인격을 증명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가 월드 애플리케이션(World App)을 설치하면 해당 앱에서는 두 개의 개인키를 생성한다. 하나는 월드 앱의 개인키이며 나머지 하나는 월드 ID의 개인키로,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두 개인키 모두 홍채 정보를 등록하기 이전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사용자의 개인정보와 독립적으로 만들어지고 저장된다는 점이다.
사용자 홍채로 코드 생성하는 월드코인
이후 월드 앱은 월드 ID의 개인키를 바탕으로 공개키를 만드는데, 이는 일반 웹3 지갑에서 개인키를 바탕으로 공개 주소를 만드는 과정에 비유할 수 있다. 그다음에 사용자가 오브(Orb)를 통해 홍채를 인식함으로써 자신이 고유한 인격임을 증명한다.
해당 홍채 정보는 사용자가 상호작용한 오브의 로컬 메모리에만 저장되며 사용자가 백업 요청을 하지 않는 이상 오브에서 삭제된다. 오브는 인식한 홍채 이미지를 바탕으로 홍채 코드를 생성하고, 해당 코드가 이전의 코드들과 독립된 개체임을 확인하면 서명한 이후 유저의 월드 ID 공개키를 온체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한다. 이후 월드 앱은 영지식 증명을 활용하여 사용자가 개인정보를 공개할 필요 없이 온체인에 등록된 월드 ID 공개키가 자신의 공개키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해준다.월드코인의 네이티브 토큰 ‘WLD’는 거버넌스 및 월드 앱 내 서비스 이용료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WLD의 초기 총공급량 100억 개 중 75%를 커뮤니티에 분배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현재 월드 ID를 등록한 사용자에게 격주로 WLD를 지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2월 29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는 월드코인의 개인정보 수집 및 처리에 대한 민원 신고에 따라 조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위원회는 월드코인의 오브를 설치한 사업자를 대상으로 생채 인식 정보 처리 과정에서 사용자에게 명확한 동의 절차를 거쳤는지 혹은 정보를 국외로 넘길 때 적법한 절차를 거쳤는지 등 전반적인 정보 처리 과정을 조사할 예정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월드코인 발급이 금지된 상태이며 영국, 프랑스, 독일 등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GPU 시장을 최초로 탈중앙화한 아카시
AI는 모델 훈련과 추론 실행을 위해 막대한 양의 컴퓨팅 자원(GPU)이 필요하며 이는 지난 10년 동안 AI 모델이 더욱 정교해지고 고성능 AI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GPU에 대한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됐다. 하지만 현재 수요는 높은 반면, 이를 제공할 수 있는 공급자는 엔비디아 등 소수의 빅테크 기업에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소비자는 원하는 품질의 GPU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을 대기해야 하거나 혹은 이마저도 몇몇 대기업들에 공급이 한정되는 문제점이 존재한다.
분산형 컴퓨팅은 블록체인의 탈중앙성을 활용하여 누구나 GPU를 공급할 수 있는 2차 시장을 생성함으로써 상기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했다. 분산형 컴퓨팅은 현재 소수의 빅테크 기업에 집중된 GPU 시장에 비해 높은 접근성, 낮은 가격, 그리고 검열 저항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분산형 컴퓨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블록체인 프로젝트로는 아카시 네트워크(Akash Network)를 꼽을 수 있다. 아카시는 코스모스 SDK(Cosmos SDK)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지분증명(PoS) 네트워크로서 ‘AKT’를 네이티브 토큰으로 활용한다. 2020년 9월 메인넷을 출시한 아카시는 2023년 9월 엔비디아의 고성능 GPU를 시간당 1.99달러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할 수 있는 아카시ML을 공개했다.
아카시 생태계에는 소비자, 공급자, 그리고 검증인(밸리데이터)이라는 세 가지 핵심 주체가 존재하며 AKT는 세 주체 간 경제적 인센티브로서 활용된다. GPU를 구매하고 싶은 소비자가 원하는 GPU 조건과 가격을 제시하면 조건을 만족하는 공급자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제시한 공급자와 연결되고, 여기서 아카시 네트워크를 운영하는 검증인은 거래 수수료 및 블록 보상을 AKT로 수령한다.에이전트(Agent)는 사용자가 요청한 작업을 해석하고 실행할 수 있는 AI 봇을 의미한다. AI 에이전트가 데이터 분석, 거래, 의사결정 등을 자동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무허가 및 탈중앙화 금융 인프라와 결합함으로써 AI 에이전트는 특히 탈중앙화 금융(DeFi)에서 사용자별 맞춤 포트폴리오 관리에 유용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AI 에이전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로는 펫치가 있다. 펫치는 최초의 AI 에이전트 프로젝트 중 하나이며 FET를 네이티브 토큰으로 활용한다. 사용자는 펫치를 통해 기존 API를 변경할 필요 없이 AI 에이전트를 사용할 수 있으며 해당 AI 에이전트는 사용자를 대신하여 여행 예약부터 자산 관리까지 다양한 작업을 자동으로 처리하도록 설정할 수 있다. 펫치의 네이티브 토큰 $FET는 펫치가 제공하는 서비스 비용으로 사용되며 토큰 보유자는 펫치 네트워크 검증인에게 $FET를 스테이킹할 수 있다.
AI와 블록체인을 결합하기 위한 시도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앞서 소개한 프로젝트를 포함하여 실제로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소수에 불과하다. 또한 지난 3월 8일 유명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서 밝힌 연구 결과에 따르면 AI 관련 암호화폐는 현재 과대평가되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여기에 더해 아직 AI와 관련한 명확한 규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사용자 입장에서는 중앙화된 주체에 의해 관리되는 서비스 대신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형 AI 서비스를 사용하는 데 주저할 수 있다는 점도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알파고(AlphaGo)가 세상을 놀라게 한 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현재 AI가 이처럼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올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처럼 AI와 블록체인의 결합이 산업에 많은 효용과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기술이 충분히 발전하고 중앙화된 주체가 제공하는 AI 서비스의 문제가 드러날수록 AI와 블록체인의 융합이 더욱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