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융합산업진흥법’이 올해 2월 27일에 제정돼 8월 28일부터 시행된다. 가상융합산업이란 ‘가상융합기술 또는 가상융합세계 관련 서비스나 기기, 상품 등의 개발, 제작, 출시, 판매, 제공, 임대 등과 관련된 산업’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가상융합세계가 바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메타버스다. 따라서 이 법은 메타버스 산업의 진흥을 위한 법률인데, 이는 세계 최초의 제정이라고 한다.
법에서는 메타버스를 ‘이용자의 오감을 가상공간으로 확장하거나 현실공간과 혼합하여 인간과 디지털정보 간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가상융합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가상의 공간이나 가상과 현실이 결합한 공간’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정의는 일반적인 메타버스의 분류로 일컬어지고 있는 증강현실, 라이프 로깅, 거울세계, 가상세계를 모두 포섭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제1장 총칙, 제2장 가상융합산업 진흥을 위한 추진체계, 제3장 가상융합산업 기반조성, 제4장 가상융합산업 진흥, 제5장 규제의 개선, 제6장 이용자 보호 등, 제7장 보칙의 총 35개의 조문으로 이루어진 동법은 다른 법령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
우선, 동법 제4조에서는 우선허용, 사후규제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누구든지 가상융합기술 또는 가상융합서비스 등의 개발 등과 관련된 행위를 할 수는 있으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이 과정에서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현저히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지만 예를 들어 유럽연합(EU)의 인공지능(AI) 규제법의 경우 사전적으로 AI 기술의 위험 등급을 분류하고 그에 따라 규제를 적용하여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행위를 미리 정해 놓고 있음을 고려할 때, 동법의 경우 보다 산업 친화적이라고 평가할 수가 있다.
다음으로, 가상융합사업자는 가상융합기술 또는 가상융합서비스 등의 이용 촉진, 확산과 자율규제 및 이용자 보호 등을 통한 가상융합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 가상융합산업 관련 협회(법인)를 설립할 수 있다(동법 제18조). 그리고 협회는 이용자를 보호하고 안전하며 신뢰할 수 있는 가상융합기술 또는 가상융합서비스 등의 제공,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하여 가상융합사업자 행동강령 또는 운영준칙을 정하여 시행하는 등 자율규제를 추진할 수 있다(동법 제27조).즉 이와 같이 메타버스 사업과 관련해 동법은 민간이 중심이 되어 자율규제를 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최근 플랫폼, 특히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관련해 규제가 지속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메타버스의 경우 산업 진흥을 우선하고자 민간에 의한 자율규제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이기도 하다.
또한 동법의 가장 큰 특징은 ‘임시기준 제도’의 도입이다. 임시기준이란 ‘가상융합서비스 등의 출시, 판매나 이용에 관한 법령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아 법령의 적용 여부 또는 적용 범위가 불분명한 경우 그에 관한 일관성 있는 법집행을 위해 임시로 마련한 기준’을 말한다.
이런 임시기준 제도는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의 법령이 적용되는지 여부나 그 적용 범위가 분명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법령의 해석기준을 관계 부처가 신속히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써 사업자의 법적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규제기관이 일관성 있는 법집행을 유도할 수 있게 하였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최근 빅데이터, AI, 메타버스, 바이오 등 새로운 기술의 등장 혹은 종래 기술의 비약적 도약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에 대하여 신기술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며 규제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미국의 독주와 이를 견제하려는 EU 사이에서 한국 나름의 입지를 구축하려면 산업 진흥에 방점을 두어야 하므로 한국의 메타버스 산업 진흥을 위한 세계 최초의 법률 제정은 환영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