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는 공화당 대선후보가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미국의 급격한 정책기조 변경 가능성을 높였다. 2020년에 이어 조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직을 놓고 재대결하게 될 전망이다.
미 대선과 함께 치러지는 상·하원 및 주지사 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상·하원을 지배하는 현 구조에 변화가 초래될 수도 있다. 대선 결과와 맞물려 추후 미국 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는 대목이다.
2024년 트럼프가 돌아온다
바이든 대통령의 슬로건은 ‘일을 끝마치자(Let’s Finish the Job)’로 현재 진행형인 바이든 1기 행정부의 정책 유지 및 발전 의도가 담겨 있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슬로건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로 2016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정책 계승 및 강화라는 방향성이 담겨 있다. 앞선 10년간의 정책을 살펴보면 △자국 우선주의 △대중국 제재 강화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이라는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다.
트럼프가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될 경우 전개될 통상 환경의 변화가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되는 경우보다 증폭될 것이다. 11월 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하는 경우 ‘미국 우선주의’ 강화와 중국과의 탈동조화 가속화는 물론 우방국과의 관계 재정립도 불가피하다.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만약 트럼프가 재집권해 미국의 무역 및 산업정책이 변화할 경우 한국 산업 및 통상 환경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최근 수년간 급증한 대미 무역흑자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의 무역적자를 가장 큰 경제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는 트럼프로서는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대비 2023년 대한국 무역적자가 2.2배로 대폭 증가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축소하기 위한 전방위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다. 2023년 한국이 거둬들인 대미 무역흑자는 445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7년 대미 무역흑자인 179억 달러에 비하면 2.4배 이상 늘었다. 같은 기간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 증가폭 2.2배를 넘어섰고, 미국과 교역이 큰 폭으로 늘어나면서 올해 한국의 제1수출 대상국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트럼프는 ‘어젠다47’을 통해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미국 무역적자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한국의 자동차와 부품, 반도체 등을 지목했다. 한국의 대미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품목에 대한 미국 측의 규제 강화와 통상압력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반도체
반도체는 미래 핵심기술 산업이라는 중요성에 비추어 미·중 전략적 경쟁 차원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를 확대하고 공급망 재편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대중국 반도체 제조장비의 수출통제에 대한 예외 사유로 중국 내 반도체 생산공장을 유지하고 있는 한국 기업에 대해 지정한 검증된 최종사용자(verified enduser) 지위를 철회할 가능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이와 함께 미국 내 반도체 공장 투자 보조금 지급에 대한 반대급부로 중국 내 공장 증설 제한을 요구하는 기존 가드레일 조건을 강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반도체 산업의 중요성과 고용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할 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만큼 리스크가 크지는 않을 것이다.
▶전기차, 2차전지, 태양광 패널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을 폐기하고 IRA 보조금 축소 내지 폐기 가능성을 예고한 것에 비추어 현지 투자한 한국 기업의 2차전지, 전기자동차, 태양광 패널 등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IRA의 첨단 제조 생산 세액공제(AMPC) 혜택 폐지 가능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다만 막대한 시설 투자에 따른 고용효과를 감안할 때 IRA 자체의 폐기까지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도 있다. 그러나 중국산 핵심 광물·부품으로 만든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 대해 IRA 보조금 지급을 배제하는 해외우려단체(FEOC) 요건이 강화될 수도 있다. 법적 조치뿐만 아니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으로 화석연료 사용 확대에 따른 재생에너지 수요 위축으로 전기차 및 2차전지 판매량 축소와 이에 따른 기존 투자 수익률의 저하 우려가 있다.
▶자동차
미국의 대한국 무역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게 한국산 자동차이다. 한·미 FTA에 따른 무관세 수입에 대하여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한·미 FTA 폐기를 압박하면서 자동차 조항 개정을 성사시켰던 선례가 반복될 개연성이 있다. 또한 무역확장법 제232조 적용 방법 등을 통해 고율관세를 부과하거나 자발적 수출제한 조치(수출쿼터)를 취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을 상정할 수 있다.
▶철강
철강 부문은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무역확장법 제232조 조치를 취했던 분야로 2기 행정부에서도 동 조치를 계승·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당시 대미 철강 수출쿼터 설정에 합의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는 기존 쿼터량 축소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고 반덤핑, 상계관세 등 무역구제 조치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한국 주력산업 분야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압박 외에도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중국 탈동조화(decoupling)에 따라 중국의 경제회복 속도 저하로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도 예상된다.
트럼프 시대, 투자 시나리오
자산시장의 변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트럼프 집권 시기의 S&P500 평균 수익률은 14.4%로 현 바이든 집권시기 수익률(9.0%, 5월 17일 기준)과 뚜렷한 차이가 있다. 트럼프 정책은 미국 기업이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하고 더 높은 임금을 지불하는 동시에 순익을 늘릴 수 있는 세금 및 규제 환경을 제공해 기업 실적 증가와 주식시장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이다. 2017년 재임 당시 법인세를 기존 35%에서 21%로 인하한 이후 15%까지 낮출 것임을 예고했기에 2025년까지 소득세 한시적 인하 적용도 연장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올해 트럼프 당선 시 ‘트럼프 당선’이라는 심리적 압박감이 증시 하락을 일시적으로 유발시킬 수 있는 요인이지만 점진적으로 법인세 인하 등 감세에 대한 기대가 증시 변동성 축소를 도모할 것이다. 권역별로는 신흥 증시에 ‘트럼프 발작’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채권
트럼프는 현 미국 금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2023년 8월 다시 당선될 경우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재연임시키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따라 Fed의 금리인하를 더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친기업적인 성향과 주가 부양에 우호적인 면을 드러내고 있다. 기업의 조달금리를 높이고 주가 상승을 방해하는 고금리에 노골적인 불만을 표출할 것이다. 저금리와 경기부양에 보다 우호적인 인물을 Fed 의장으로 선임할 가능성이 높다.
▶원자재
트럼프의 주요 공약은 트럼프 1기 정책기조와 다르지 않다.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에 미칠 영향은 다소 복합적이나 가격 상승보다는 하향 안정에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의 경기부양을 위한 적극적인 재정 강조와 금리인하 기대를 높이면서 수요에 대한 기대를 높이겠지만 그 외 국가들에 대한 보편적 관세 도입, 중국에 대한 추가 관세 인상 등의 공약은 신흥국들의 수요 우려로 작용하여 유가 상승을 제한할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트럼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즉시 종결 공약과 친러시아 성향은 러·우 전쟁의 종결에 대한 기대를 높일 것이다. 이미 에너지 가격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하락했음에도 전쟁 종결은 공급 리스크 프리미엄 축소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금은 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불확실성에 따른 위험을 헤지할 수 있는 자산이다. 트럼프 당선 시 초기에는 경제 전망의 방향성이 불확실해 금 가격의 상방 압력을 높일 것이다.
▶달러
트럼프가 재집권 시 Fed의 금리인하 사이클 시작과 향후 금리인하 속도에 대한 압박이 거세지면서 달러는 약세 압력이 높은 우위 흐름을 보일 것이다. 다만 트럼프의 주요 공약인 무역마찰, 국제정책, 군사적 갈등 고조로 인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는 달러화의 상방 압력을 높이는 요인으로, 만일 대만과 한·미·일 동맹, 북한 문제로까지 범위가 확대될 경우 달러화에 미치는 영향은 보다 크게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