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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럽, 일본 등 전세계 주요 증시가 우상향하는데 한국 증시는 왜 박스피를 벗어나지 못할까. <한경비즈니스>는 밸류업 프로젝트, 그 이전에 한국 자본시장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를 들여다봤다. 이를 위해 국내 자본시장 최일선에 참여하고 있는 증권사 리서치센터장 20인과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 30인 총 50인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다.

최근 10년간 국가별 총수익지수

1. 밸류업 왜 나왔나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정책이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한국 증시는 최근 10년간 주요국 중 최하위 수익률을 기록했다.

 

닛케이지수는 10년간 297% 뛰었다. 같은 기간 미국 다우지수(271%), 대만 가권지수(246%) 수익률을 웃돌았다. 독일 닥스(120%), 중국 상하이종합지수(71%)와도 비교할 바가 안 되고 한국 코스피지수(61%)와 비교하면 5배 가까이 차이 났다.

 

반면 일본은 2013년 아베노믹스로 시작한 3개의 화살 정책 이후 2014년 거버넌스 개혁, 2023년 PBR 개혁을 거치며 증시를 끌어올렸다. 증시만 문제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감소와 인구구조 변화, 지정학적 갈등에 따른 시장 분절화 등으로 한국이 경제성장 둔화 추세로 접어들었다.경제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때다. 한국 정부도 일본의 성공사례를 교과서로 삼아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고, 국민 입장에서는 근로소득 외에 자산 소득을 통한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를 가능하게 한다는 취지다.

 

2.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은 왜 나타나나?

기업의 본질적인 경쟁력이 하락했고 거버넌스 혁신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제조업 위주의 기업이 많은 만큼 자본 효율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고부가가치 산업이나 금융 산업이 강한 선진국 대비 자기자본이익률(ROE)이 낮은 이유다. 미국, 유럽 등 그동안 한국 제조업의 ‘시장’ 역할을 했던 국가들이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자국 기업의 제조업을 키워주는 것 또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낮아지는 원인이다.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 대부분 이익 대비 주가가 저평가돼 있기도 하다. 이는 한국 기업의 거버넌스 개혁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를 훼손하는 쪼개기 상장, 성장보다 상장에만 관심 있는 IPO 버블은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소액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는 낮은 주주환원율도 문제다. 한국의 지난 10년 평균 주주환원율은 29%로 매우 낮다. 반면 미국의 주주환원율은 92%에 달한다.

 

3. 밸류업, 어떻게 하는 걸까

밸류업 프로그램은 저평가돼 있는 국내 기업이 스스로 주가를 높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다. 기업이 스스로 기업가치의 저평가 이유를 분석해 3년 이상 중장기에 걸친 주가 상승 목표를 세우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기업이 자사주 소각 등 주주친화적인 노력을 통해 적절한 주가를 찾아가면 국가가 인센티브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4. 뭐가 변할까?

가장 큰 변화는 상장사가 매년 기업가치 개선계획을 세워 거래소에 자율 공시한다는 점이다. 코스피 상장사는 물론 코스닥 기업까지 2407곳(지난해 말 기준)이 대상이다. 계획서엔 현황 진단, 목표 설정, 계획 수립, 이행 평가·소통 등이 담긴다.

 

개선계획 단계에서 그치지 않고 1년 뒤 전년도 평가와 주주의 피드백 결과도 공개할 예정이다. 공시가 의무 사항이 아니라 ‘자율 공시’로 기업 참여가 부진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금융위는 “공시 의무화는 오히려 의미 없는 형식적 계획 수립 공시만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번 밸류업 프로그램엔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주요 투자지표를 상장사·시장(코스피와 코스닥)·업종별로 세분화한 뒤 공표하는 내용도 담겼다. PBR을 비롯해 주가수익비율(PER), 자기자본이익률(ROE)은 분기별로, 배당지표(배당성향과 배당수익률)는 연 1회 공표한다. 사실상 상장사의 ‘기업가치’ 성적표가 공개되는 셈이다.

 

기업가치 개선 성과가 뛰어난 기업엔 인센티브를 준다. 인센티브 방안을 살펴보면 매년 5월 기업 밸류업 표창을 신설하여 표창을 받은 기업에 모범 납세자 선정 우대, R&D세액공제 사전 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감면 컨설팅 우대 등 세정 지원과 주기적 지정 감사 면제 심사 시 가점 부여, 거래소 연부과금 면제, 불성실공시 관련 거래소 조치 유예 등을 지원한다.하지만 아직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정해지지 않은 인센티브가 대부분이다. 또 정부는 기업 수익성과 시장 평가가 우수한 우등생(상장사)을 모아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만들고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연말에 선보인다. 벤치마크 지수(밸류업 지수)에 편입된 기업은 기관과 일반투자자의 자금이 몰릴 확률이 높다.

 

5. 효과가 있을까?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할 만한 ‘당근’이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주가 상승에 대한 지배주주와 일반주주의 인식이 상반되는 현실에서 기업과 이사회가 왜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주가를 올리고자 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한 근거 제시가 없다”며 “단지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관점이라면 아무리 구체적이고 좋은 말이 가득한 가이드라인이라도 미사여구로 그치고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증시 밸류업

오너가 지배하는 기업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익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기업이 밸류업에 적극 나설 요인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등 자산운용사의 역할도 중요하다. 일본은 강력한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용해 시장이 기업의 개혁을 주도할 수 있게 문화를 바꿨다.

 

연기금과 같이 자산을 수탁하고 운용하는 기관투자가가 적극적인 주주제안 등으로 상장기업에 대한 압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다. 즉 책임 있는 기관투자가의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정함으로써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한다는 방안이었다.

 

6. 지금까지의 성적은?

‘기업 밸류업 공시’를 시행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고작 7곳의 상장사만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7곳은 키움증권, 에프앤가이드, KB금융, 우리금융지주, 콜마홀딩스, DB하이텍, HK이노엔 등이다.

 

6월 27일 현재 코스피·코스닥시장 전체 상장사가 2682곳인 점을 고려하면 0.26%에 그친 것이다. 자율공시인 데다 상장사들은 상속세 인하 등 7월 이후 발표될 세제 개편 방향을 관망하며 참여 여부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밸류업 직후 주가가 뛴 기업들도 있다. DB하이텍은 6월 14일 밸류업 계획 관련 일정을 공시한 후 24일까지 8거래일 중 5거래일을 상승하는 등 27.86% 급등했다. 6월 20일 밸류업 공시 계획을 내놓은 콜마홀딩스도 공시한 날 주가가 11%까지 올랐다.

 

시장에서는 밸류업 프로그램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면서 세제 개편 등을 통해 정부의 의지를 확인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안영준 하나증권 연구원은 “하반기 밸류업 2차 랠리의 원동력은 아마도 7월 말∼8월 초 기획재정부가 발표할 2025년 세법 개정안”이라고 분석했다.

 

7. 향후 시나리오는?

밸류업 프로그램 가동을 위한 정부의 향후 추진 방향으로 세제 개편안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 7월에 포함될 세제 개편은 배당 확대와 자사주 소각 같은 주주환원 시 세제 혜택을 비롯해 상속세 인하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유예, ISA 제도 개선 등인데 이 중 어떤 것이 포함될지 여부에 주목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자사주 소각 시 법인세 혜택과 배당소득 분리과세,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및 유예 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지도 관심사다. 지난 21대 국회에서 추진된 상법개정안은 아직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상법개정안에는 전자주주총회 도입, 물적분할 반대주주 보호 강화, 최대주주의 상속세 할증 폐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재계는 이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치고 있다.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키느냐를 두고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그간 상법을 개정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주들의 권리 행사가 촉진되고 모든 주주가 합당한 대우를 보장받도록 기업지배구조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상법개정안으로 이사는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에 모두 충실해야 하지만 이익이 충돌했을 때는 양쪽으로부터 책임 추궁을 당할 있다며 반대 입장에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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