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그룹 지배구조개편안 소액주주 권익침해 논란
고평가된 두산로보틱스 주가가 불공정 합병 원인
공모가로 합병하면 지분율·합병비율 등 모두 감소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놓고 새우가 고래를 삼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두산은 각 계열사별 사업 시너지를 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지만 이 과정에서 두산에너빌리티 및 두산밥캣 주주들의 주식가치의 훼손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를 두고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은 22일 세미나를 열고 두산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의 근본적 원인은 고평가된 두산로보틱스 주가라고 지적했다. 적자를 내고 있어 가치평가도 어려운 두산로보틱스를 두산그룹의 캐시카우인 두산밥캣과 동일한 가치로 보는 것에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주가가 아닌 두산로보틱스 공모가를 기준으로 현재 합병안을 반영하면 합병 이후 ㈜두산의 지배력과 배당금 등 모든 것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캐시카우 두산밥캣, 적자 두산로보틱스에 넘긴다
두산그룹은 지난 11일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두산그룹 지배구조개편안>
두산에너빌리티 인적분할→ 투자사업부문(두산밥캣 지분보유) 두산로보틱스가 흡수합병→ 두산밥캣 잔여 지분에 대해 두산로보틱스 신주 교환(포괄적 주식교환)→ 두산밥캣, 두산로보틱스 100% 완전자회사→ 추후 두산로보틱스와 두산밥캣 합병
먼저 두산의 주요 계열사인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 지분을 가진 투자부문을 인적분할 방식으로 떼어낸다. 이를 두산로보틱스가 가져간다. 합병을 통해 두산로보틱스가 투자사업부문의 지분율을 모두 확보하는 것이다.
인적분할은 A회사를 A와 B 두 개로 쪼개는 방식이다. 이때 A회사 주주들의 지분율도 A, 와 B로 쪼개진다.
두산에너빌리티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도 인적분할을 하면 존속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식과 투자사업부문(두산밥캣 지분 보유) 주식으로 쪼개진다. 이후 두산로보틱스가 투자사업부문을 합병하면 합병비율(1:0.0315651, 두산로보틱스:두산에너빌리티)에 따라 투자사업부문 주주들에게 두산로보틱스 신주를 나눠준다.
이후 두산로보틱스는 나머지 두산밥캣 주주들의 지분(53.93%, 국민연금 및 외국인 등 포함)에 대해 포괄적 주식교환 방식으로 두산로보틱스의 신주를 지급할 예정이다. 결과적으로 두산밥캣은 두산로보틱스의 100% 완전자회사가 된다.
궁극적으로 내년 상반기 두산로보틱스는 완전자회사로 편입한 두산밥캣을 흡수합병할 예정이다.
불공정한 합병 용인하고 있는 자본시장법
이날 주제발표를 맡은 천준범 와이즈포레스트 변호사는 "합병은 서로 자기회사가 더 잘났다고 내세우기 때문(합병비율에 따라 기업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하기 쉽지 않은 자본거래"라며 "그럼에도 한국은 합병과 분할이 굉장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국주식시장에서 합병·분할이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이를 규정하고 있는 자본시장법이 공정한 합병·분할을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천준범 변호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은 합병 시 최근 1개월 간 평균종가, 최근 1주일간 평균종가, 최근일 종가를 기준으로 합병가액을 산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무조건 이 규정을 따라야 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적자를 내고 있는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고평가된 시점에서 두산밥캣을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분할해 흡수합병하면서 결과적으로 두산로보틱스와 매출 9조원이 넘는 두산밥캣의 1:1로 동일한 가치를 인정받는 불공정한 합병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두산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을 그대로 이행하면 두산밥캣에 대한 ㈜두산의 지배력은 기존 14%에서 42%로 증가한다. ㈜두산이 두산밥캣으로부터 받는 배당도 기존 6400억원에서 1조9000억원으로 크게 늘어난다.
만약 두산로보틱스의 고평가된 현재 주가가 아닌 공모가(2만6000원)를 기준으로 현재와 같은 지배구조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분할한 투자사업부문(두산밥캣 지분 보유)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비율은 1:1로 사실상 동일한 가치가 된다. 아울러 포괄적 주식교환까지 이루어진 이후 ㈜두산의 합병 두산로보틱스 지분율은 기존 합병안(42%)보다 줄어든 18.7%가 된다. 지분율이 줄어든 만큼 ㈜두산이 받는 배당금 액수도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사회 재논의·금감원 증권신고서 엄격심사 필요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션 브라운(Sean Brown) 테톤캐피탈 이사는 "한국은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계산하는데 미국은 기업가치를 주로 분석한다"며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직접 계산해 본 결과 두산밥캣의 시가총액은 15조원이고 두산로보틱스의 시가총액은 7000억원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두산로보틱스는 보통 적자가 아니다"라며 "사실상 가치평가가 어려운데도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를 1:1 동일한 가치로 봤다는 것은 사실상 두산밥캣 주주들의 지분가치가 휴지조각이 되고 희석 당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천준범 변호사는 "합병은 주주들 사이에서 재산권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사회가 사업적 관점만 검토할 것이 아니라 주주를 위한 최선의 이익을 반드시 검토해야 한다"며 "현재 이사회 의사록을 보면 이러한 검토가 안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니 다시 논의를 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두산로보틱스 주식이 과도하게 뻥튀기되어 있다는 점이 결과적으로 이번 합병안의 위험 요소인데도 금융감독원 증권신고서에는 변동성이 있을 수 있다 정도로 설명해 놓고 있다"며 "금감원 역시 증권신고서를 보다 엄격하고 심사하고 두산그룹 합병안에 대해서도 정정요청을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션 브라운 이사는 "결과적으로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두산이 실질적인 수혜자"라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두산밥캣 지분율을 끌어올리고 이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지분율은 희석되는 대신 두산 재벌가만 어마어마한 수혜를 받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김광중 클라스한결 변호사는 "주가를 기준으로 하는 합병비율 산정은 문제가 있다"며 "다만 법원에 이 사안을 들고 가도 자본시장법에 규정되어 있다는 이유를 들 것이므로 결과적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이사가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고려할 수 있도록 하는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남우 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두산로보틱스의 주가가 이 정도로 오른 것은 공매도를 현재 금지하고 있는 것이 이유"라며 "공매도를 제한하면 버블이 생긴다는 대표적 사례인 만큼 공매도를 빨리 재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