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2월부터 1년 6개월째 금리 3.5% 유지
가계부채 급증·부동산 가격 상승 고려한 듯
올해 성장률 2.4%·소비자 물가 2.5% 하향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했다. 물가 상승률이 2%대 중반으로 떨어지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인하 가능성도 높아지는 등 금리 인하 여건은 조성됐지만, 최근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팔라지면서 금융 불안이 확대된 것을 고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는 22일 열린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2·4·5·7·8·10·11월과 올해 1·2·4·5·7월에 이어 이번까지 13번 연속 금리를 유지한 것이다.
이번 동결 결정으로 금통위는 기준금리를 1년 6개월째 묶어뒀다. 한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6%대로 치솟은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을 낮추기 위해 2021년 8월부터 작년 1월까지 금리를 연 0.5%에서 3.5%까지 올렸다. 그러나 경기 부진이 예상되자 작년 2월부터 금리 인상을 멈췄다.
금통위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기준금리 동결에 무게가 실렸다. 금융투자협회가 지난 9일부터 14일까지 채권 보유·운용 관련 종사자 100명을 설문한 결과, 응답자 90%가 한은이 8월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나머지 10%는 0.25%포인트(p) 인하를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주택거래가 늘면서 가계부채 증가세가 가팔라진 점에 주목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과 비교해 이달 16일까지 4조원이 넘게 불어났다. 이런 추세가 이달 말까지 지속된다면 역대 최대였던 전달의 증가폭(7조6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
불어난 가계대출은 부동산 가격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이 16일 발표한 ‘7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아파트·연립·단독주택) 매매가격지수는 전월 대비 0.76% 상승했다. 상승 폭은 2019년 12월(0.86%) 이후 4년 7개월만에 최대치다.
한은은 금리 인하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수도권 부동산 가격이)5월 말부터 7월까지 올라가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라졌다”면서 “주택가격 상승을 촉발하는 정책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 금통위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동결 결정도 이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을 제외한 물가와 국내경기 상황만 보면 금리인하 여건은 조성돼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7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6% 올랐다. CPI 상승률은 올해 1월 2.8%에서 2~3월 3.1%로 높아진 뒤 지난 4월(2.9%)부터 4개월 연속 2%대를 기록하고 있다.
내수부진도 심화하고 있다. 국책연구원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7일 발표한 ‘경제동향’ 8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높은 수출 증가세가 지속됐으나 내수는 미약한 수준에 그치며 경기 개선을 제약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KDI가 내수 둔화·부진을 진단한 것은 작년 12월부터 9개월째다.
대외적으로는 미국 연준의 9월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은의 금리 인하 부담도 줄어들었다. 22일 시카고상업거래소(CME) 그룹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미국 연방기금금리(FF) 선물 시장 참가자들은 9월 인하 확률을 100%로 보고 있다. 한 달 전과 비교하면 인하 확률이 1.9%p 더 늘었다.
시장의 눈은 10월에 열리는 다음 금통위에 쏠려있다. 9월부터 가산금리(스트레스 금리)를 종전 0.375%포인트(p)에서 0.75%p로 높이는 스트레스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2단계가 도입되면 금리 인하의 마지막 퍼즐인 가계부채 증가세가 둔화될 수 있어서다. 스트레스DSR은 DSR을 산정할 때 가산금리를 부과해 대출 한도를 줄이는 제도다. 2단계 스트레스DSR을 적용하면 연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대출받을 수 있는 돈은 최대 2700만원까지 줄어든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은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마이너스(-0.2%)를 기록하면서 내수 부진이 확인됐고, 지난 7월 회의에서 한은이 물가 안정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한 만큼 금리 인하 명분은 충족됐다”면서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9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리인하에 대한 부담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한편 한은은 이날 발표한 ‘수정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우리나라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 5월에 발표한 2.5%보다 0.1%p 내린 2.4%로 제시했다. 2분기 GDP가 마이너스(-0.2%) 성장을 기록하자 하향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CPI 상승률도 직전 전망치보다 0.1%p 내린 2.5%로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