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이하 한국타이어)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한온시스템 인수가 삐걱대고 있다. 최근 한온시스템 주가가 급락하자 제값을 주고 사는 게 맞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면서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 고심이 커졌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의 한온시스템 인수가 삐걱대면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사진은 한온시스템 평택공장 전경.

한온시스템 인수 삐걱대나

주가 떨어져 ‘프리미엄 과도’ 의견

한국타이어와 한온시스템은 지금으로부터 세 달여 전인 5월 3일 각각 이사회를 열고 한온시스템 최대주주인 사모펀드 운용사 한앤컴퍼니 지분(50.5%)의 절반(25%)을 한국타이어에 1조3679억원을 받고 넘기는 안을 의결했다.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유상증자에 참여해 3651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되는 신주 12.2%를 추가로 취득하면 한국타이어는 한온시스템 지분 50.5%를 확보해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한국타이어는 앞서 2014년 1조800억원을 투자해 한온시스템 지분 19.5%를 확보한 바 있다. 한온시스템은 세계 2위 자동차 열관리 기업이다.

이번 인수가 마무리되면 한국타이어가 소속된 한국앤컴퍼니그룹 자산총액은 26조원으로 치솟으면서 단숨에 재계 30대 그룹에 진입한다. 한국앤컴퍼니그룹은 한온시스템 인수로 타이어, 배터리 등에 이어 자동차 열관리 시스템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자동차부품그룹으로 도약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조현범 회장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차세대 기술에 기반한 사업을 확대해 2030년 매출 30조원 그룹으로 성장할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오랜만에 대형 딜이 성사되면서 재계 안팎 기대가 컸지만, 최근 한온시스템 인수에 이상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한국타이어와 한앤컴퍼니가 맺기로 했던 주식매매계약(SPA) 본계약 체결 시한이 무기한 연기됐다. 지난 8월 3일로 예상했던 유상증자 납입도 함께 미뤄졌다. 한온시스템 주가가 급락한 데다 강성노조로 불리는 한온시스템 노조의 인수 반대 움직임이 심상찮자 한국타이어 내부에서는 “인수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쏟아진다는 후문이다.

한온시스템 주가는 최근 4000원 아래로 떨어졌다(8월 13일 종가 3910원). 한국타이어의 인수 발표 직후인 5월 7일 당시 주가가 6800원으로 신고가를 찍었지만 세 달 만에 30%가량 하락했다. 한온시스템 주가가 급락한 것은 실적 전망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한온시스템의 2분기 영업이익은 716억원에 그쳐 전년 동기 대비 50.1% 감소했다. 매출은 2조5599억원으로 1986년 창립 이래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했지만 수익성이 좋지 않았다.

한온시스템이 실적 부진에 빠진 것은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따른 글로벌 전기차 판매 둔화 영향이 크다. 글로벌 열관리 솔루션 기업이라 전기차 판매가 줄어들면 실적에 직격탄을 맞는 구조다. 재무지표 흐름도 좋지 않다. 한온시스템 부채비율은 1분기 기준 282.5%로 300%에 육박한다. 이 때문에 주요 증권사들은 한온시스템 목표주가를 줄줄이 내리는 모습이다. 미래에셋증권과 키움증권은 각각 5700원과 5500원, 대신증권은 4900원으로 목표주가를 낮췄다. 외국계인 노무라증권은 아예 매도 의견을 내고 한온시스템 목표주가를 올 초 4000원에서 최근 3000원으로 떨어뜨렸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전기차 부문 수익성이 악화된 데다 설비 투자 부담도 커서 한온시스템 영업이익이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한온시스템은 지난 5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한국지수 구성 종목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MSCI지수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주가지수로 주요 글로벌 투자의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

한국타이어가 지급하기로 한 인수대금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는 한앤컴퍼니 보유 지분 1억3345만주를 주당 1만250원에, 유상증자를 통해 발행한 신주는 주당 5605원에 각각 취득하기로 했는데, 이후 한온시스템 주가가 곤두박질쳤다는 점이 변수다. 한온시스템 주가를 4000원으로 잡으면 한국타이어는 한앤컴퍼니에 주당 160% 수준의 프리미엄을 내는 셈이다.
노조 리스크도 무시 못할 변수다. 강성으로 불리는 금속노조 소속인 한온시스템 노조는 한국타이어의 실사 기간에 현장을 봉쇄하며 계약 전 3자 협상 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사 협상에 노조를 끼워달라는 주장이다. 노조는 고용 보장, 위로금 지급 등을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재계에서는 한국타이어 측이 한온시스템 인수 가격 조정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972년생인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과 1971년생 한상원 한앤컴퍼니 대표는 친분이 두터운 사이로 알려진다. 그만큼 인수 과정이 순탄하게 진행되나 싶었지만 ‘해피엔딩’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한온시스템 실적


“글로벌 전기차 시장 침체가 예상보다 오래가는 데다 강성노조로 손꼽히는 한온시스템 노조가 전방위로 인수 협상 저지에 나서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국타이어 입장에서는 한온시스템 주요 재무지표가 악화된 상황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이 과도하다는 점을 어필하면서 가격 이외 조건을 손보는 등 어떻게든 인수 부담을 줄이려 할 가능성이 높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한국타이어 하반기 실적 불안

‘승자의 저주’ 우려에 딜 무산 가능성도

한국타이어의 한온시스템 인수가 안갯속에 빠져든 가운데 한국타이어 실적은 그나마 순항 중이다. 2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은 42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2% 늘었다. 매출도 2조3178억원으로 같은 기간 2.4% 증가했다.

한국타이어 실적이 고공행진하는 것은 고수익 제품 판매 비중이 늘어난 덕분이다. 한국타이어의 승용차, 경트럭 타이어 매출에서 18인치 이상 고인치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분기 46.3%로 전년 동기 대비 2.8%포인트 증가했다. 특히 급성장하는 중국 시장에서 고인치 타이어 판매 비중이 63%로 늘어나며 수익이 급증했다. 규격이 큰 타이어는 일반 타이어보다 20~30%가량 비싸게 팔려 타이어 제조사 수익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세를 몰아 한국타이어는 고인치 타이어 판매 비중을 연말까지 49%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전기차 전용 타이어 시장도 호조세를 보인다. 한국타이어는 2022년 세계 최초로 풀라인업 전기차 전용 타이어 브랜드 ‘아이온(iON)’을 선보인 후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16인치부터 22인치까지 다양한 규격으로 전기차 타이어를 생산해 포르쉐 ‘타이칸’, 아우디 ‘e-트론 GT’ 등 글로벌 주요 브랜드 수주를 늘리는 중이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할 때는 아니다. 글로벌 경기 불황으로 신차용 타이어 판매가 하락세라 하반기 실적 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송선재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 북미 등에서 완성차 가동률이 떨어지면서 신차용 타이어 매출이 감소해 한국타이어의 하반기 실적 전망이 불안하다. 한온시스템 인수가 명확해진 후 본업과의 시너지 효과를 살펴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하나증권은 한국타이어 목표주가도 6만원에서 5만원으로 하향 조정했다.

“한국타이어 입장에서는 경기 불황으로 실적이 불안한 상황에서 섣불리 비싼 가격에 한온시스템을 인수했다 ‘승자의 저주’에 시달릴까 우려하는 듯하다. 한앤컴퍼니와 한온시스템 인수 가격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인수가 아예 무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계 관계자 귀띔이다.

다만 한국타이어 측은 “한온시스템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인수 무산 가능성을 일축했다.
원문기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