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9월이면 전 세계의 시선이 ‘괴짜들의 시상식’에 몰립니다.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꼽히는 ‘노벨상’을 패러디한 ‘이그노벨상’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이그노벨상의 시상식은 상식에서 조금 벗어난 엉뚱함으로도 유명합니다. 세상의 온갖 다양하고 해괴망측한 질문에 답을 찾아낸 수상자들은 상금으로 ‘10조 달러’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달러가 아닙니다. 짐바브웨 달러죠. 미국 달러로 환산하면 40센트 정도, 우리 돈으로는 450원 정도의 값어치라고 하네요.
짐바브웨는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빠르게 상승하고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전 세계 경제 지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이트인 ‘트레이딩이코노믹스닷컴’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전년 대비 물가상승률은 243.8%입니다. 그나마 2022년 8월(285%)과 비교하면 상승률이 완화된 상황입니다. 짐바브웨는 1980년 독립 이후 2000년대 중반 최악의 인플레이션을 겪어야 했습니다. 짐바브웨 정부는 2008년 1월부터 7월까지 물가상승률을 3억%라고 발표한 바 있지만 경제지인 포브스 아시아판은 짐바브웨의 물가상승률이 무려 6억5000만 구골%에 이른다는 계산을 내놓은 바 있기도 합니다. 구골(googol)은 10의 100제곱을 뜻하는 단위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구글(google)의 어원이 된 바로 그 단위가 맞습니다.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물가가 평균적으로 98.66% 뛸 정도라고 하니 단위조차 생소할 만큼 어마어마한 초인플레이션으로 학계에서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달걀 3개를 사기 위해 1000억 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현실이 되는 겁니다.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돈의 가치’
장황하게 짐바브웨 달러 이야기를 늘어놓았지만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법니다. 가장 흔한 방법은 일을 한 뒤 월급을 받는 것이겠죠. 그렇게 번 돈으로 우리는 물건을 삽니다. 돈은 기본적으로 ‘물건이나 서비스를 거래하기 위한 매개체’니까요. 번 돈을 당장 모두 사용하기보다 저축을 하기도 합니다. 일종의 미래를 위한 투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돈을 그저 누구도 찾지 못할 장소에 보관하기만 해서는 저축이 되지 못합니다. 돈의 가치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20년 전인 2000년의 ‘1만 달러’와 2023년 현재의 ‘1만 달러’는 그 가치가 분명히 다를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돈의 가치는 떨어지기 마련이죠. 돈의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 똑같은 가치의 물건을 거래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겁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돈의 가치가 떨어지지 않게 지키는 것’ 역시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면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 계속 떨어지는 것일까요.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은 “시중에 돈이 너무 많으면 콩나물이 금이 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화폐는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발행합니다. 중앙은행에서 돈을 찍어 내면 찍어 낼수록 화폐의 가치는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모든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이라는 것이 그의 의견이었죠.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인류의 역사는 곧 돈의 역사이고 돈의 역사는 곧 인플레이션의 역사’라고 말하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학자인 하노 벡 등이 펴낸 ‘인플레이션 : 부의 탄생, 부의 현재, 부의 미래’입니다. 인류는 역사상 수없이 많은 인플레이션을 겪어 왔습니다. 고대 로마시대 전쟁으로 인한 저질 동전부터 20세기의 초인플레이션에 이르기까지 하루아침에 ‘화폐의 가치’가 무너지고 그저 종이 조각이 돼 버린 경우들입니다.
그런데 이 책은 과거 인플레이션 역사들을 살펴보면 ‘동일한 패턴’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화폐가 붕괴되기 시작하는 초창기에는 늘 국가(정부)의 채무가 과도하게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경기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국가는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손쉬운 해결책’을 택합니다. 바로 ‘화폐 유통량 증가’, 다시 말해 더 많은 돈을 찍어 내는 것이죠. 이렇게 찍어 낸 수많은 돈들은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이라는 화살로 되돌아온다는 겁니다. 이미 수많은 역사에서 증명하고 있듯이 말이죠.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1920년대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입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은 당시 어마어마한 부채를 지게 됩니다. 당시 독일의 외화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30%였습니다. 독일은 이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갚아야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죠. 당시 승전국들이 패전국이었던 독일이 소유한 모든 국외 자산을 압류 동결한 데다 독일이 갖고 있던 채권조차 무효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빚을 갚아야만 했던 독일은 최악의 방법을 택합니다. 빚 갚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돈을 찍어 낸 겁니다. 시중에 돈이 풀리자 마르크화의 가치가 급락합니다. 1922년 말 160마르크로 살 수 있던 ‘빵 한 조각’이 1923년 말 2000억 마르크로 가격이 뛰어오릅니다. 은행에 저축해 둔 돈이 하루 사이에 휴지 조각이 되면서 겁을 먹은 사람들은 은행으로 달려갔습니다. 돈의 가치가 더욱 떨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싼 오늘, 조금이라도 더 많은 물건을 사두는 게 이익이니까요. 더 많은 사람들이 은행에 몰려들면서 금융 시장 또한 흔들렸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위기의 불을 끄기 위해 더 많은 돈을 더 빠르게 찍어 내기 시작합니다. 당시 독일의 이와 같은 암울한 경제 상황은 결국 히틀러의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흑역사’로 끝을 맺고 말았죠.
인플레이션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아주 기초적인 질문 하나. 다시 말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돈의 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낮아져 왔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해마다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우리는 ‘인플레이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인플레이션’을 말할 때 정확하게 딱 떨어지는 물가상승률의 기준은 없습니다. 통상 물가가 4~5% 이상 오르면 일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초단기간에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을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통상 물가상승률 50%를 넘을 정도가 되면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판단하죠. 20세기 이후 인류는 총 28번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겪었다고 합니다. 이 중 20번 이상이 1980년대 이후 발생했죠.
물가상승률을 판단할 때는 다양한 경제 지표들을 활용합니다. 그중 가장 흔히 사용되는 것이 소비자물가지수(CPI)라고 불리는 지표입니다. 미국은 노동부 산하 노동통계국이라는 조직에서 CPI를 조사, 발표합니다. 미 중앙은행(Fed)이 출범한 1913년부터 CPI 조사를 시작했죠. 한국은 통계청에서 작성하고 있습니다. 매달 통계청 직원들이 40개 도시의 업체를 방문해 대표 품목의 가격을 조사해 소비자물가지수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모든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CPI는 물가 수준의 전반적인 변화를 추정하기 위해 가장 대표적인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게 됩니다. 시리얼이나 우유 등 식음료는 물론 주거지의 임대료와 같은 주택, 아기 옷 등 의류, 자동차 보험 등 교통비, 처방약 등 의료, 텔레비전과 같은 레크리에이션, 대학 등록금 등 교육비 외에 다양한 품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대부분의 재화를 포함하는 일종의 ‘장바구니 물가’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이때 장바구니에 포함되는 품목들은 일상의 변화를 반영하기 위해 약 2년마다 대체된다고 합니다.
물가를 측정하는 데 또 하나의 장애물이 있죠. ‘장바구니’에 포함된 품목이라고 해도 시장에서 이 모든 물건들의 거래 가격은 천차만별입니다. 심지어 각 품목마다 사이즈나 유통되는 양도 다 다르죠. 이 때문에 물가를 측정할 때는 어떤 특정 연도의 가격 수준을 100으로 정해 두고 ‘기준’으로 삼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의 CPI 기준 연도는 2020년입니다. 2022년 12월 기준 CPI는 109.28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말해 2020년 대비 소비자 물가가 9.28% 올랐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