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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전자 사업 주력으로 성장, 61개 계열사 거느린 지주사
재계 1~5위 그룹 지주사 (주)LG가 유일하게 장신 기업

락희화학은 1955년 '럭키치약'과 'LUCKY'를 상표로 등록하고 치약을 본격 생산·판매했다. 1958년에는 금성사(LG전자)를 설립했다. [사진 LG그룹 홈페이지]
락희화학은 1955년 '럭키치약'과 'LUCKY'를 상표로 등록하고 치약을 본격 생산·판매했다. 1958년에는 금성사(LG전자)를 설립했다. [사진 LG그룹 홈페이지]

(주)LG(LG)는 LG그룹 지주사로 61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LG그룹은 120개국에 157개 현지법인이 있는데,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한 회사 정점에 LG가 있다는 뜻이다. 2003년 3월 국내 주요기업 가운데서는 처음으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화했고 이곳에서 전사적 차원의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와 인재 육성, 브랜드 관리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LG상사‧LG디스플레이‧LG이노텍‧LG화학‧팜한농‧LG생활건강‧LG유플러스‧LG헬로비전‧LGCNS‧LG경영개발원, LG스포츠 등이 주력 계열사로 꼽힌다.

 

2021년 기준 영업수익(매출액)은 9897억6000만원, 영업이익은 7403억 7300만원을 기록했다. 직전 해에는 1조 162억원의 영업수익과 7940억2300만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LG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31년 구인회(具仁會)·구철회(具喆會) 형제가 경상남도 진주에서 세운 구인상회로 이야기한다. 다만 공식적으로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이 락희화학공업사(LG화학)를 설립한 1947년 1월을 효시로 삼는다.

 

락희화학은 국내 최초로 국산 화장품인 ‘럭키크림’을 생산했고 한국전쟁이 진행됐던 1952년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빗과 비눗갑을 출시했다. 1955년에는 우리나라 대표 상품 중 하나로 꼽히는 ‘럭키 치약’을 본격적으로 생산‧판매하며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지금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를 설립한 것은 1958년이다. 금성사는 ‘GoldStar’ 상표를 부착한 국내 최초의 국산 라디오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대표 전자회사로 발돋움했다. 1965년에는 국산 냉장고 1호를 생산했고 이듬해에는 국내 최초 19인치 흑백TV를 만들며 국내 전기·전자 사업을 이끌었다.

이후 석유화학‧정밀화학‧에너지‧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건설‧증권‧유통‧보험‧금융 등 서비스산업 등 다양한 영역으로 사세를 확장해나갔다. 4대를 거친 기업 승계 과정에서 LG그룹 오너 일가의 분리 독립 경영이 이뤄졌지만, LG그룹의 뿌리로 볼 수 있는 전자와 화학 사업은 LG의 주력사업으로 남았다.

 

사업 초기 ‘락희’(樂喜)라는 사명은 ‘럭키(Lucky)’에서 따왔다. 구인회 창업회장은 화장품 ‘럭키크림(Lucky Cream)’ 이름을 결정할 당시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크림이 되라는 의미에서 럭키라는 단어에 주목했다고 한다.

 

이후 기업이 성장하면서 락희화학은 럭키화학으로, 그룹명은 럭키그룹으로 바뀌었다가 금성사의 존재가 커진 후 1983년 ‘럭키금성그룹’으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지금의 LG 사명도 럭키(Lucky)와 골드스타(GoldStar)의 머리글자에서 유래했다.

 

LG는 지주사인 만큼 독자적인 사업보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었던 배경이 중요한 관심사로 해석된다. 지주사 체제로 전환지 20년 남짓하지만, LG가 장신 기업에 이름을 올린 이유도 주목해볼 수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LG그룹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LG그룹 최고경영진과 대화를 나누며 이동하고 있다

LG화학이 뿌리, 지주사 전환으로 전통 계승

LG가 장신기업이 된 것은 LG그룹의 효시인 LG화학의 뿌리를 계승했기 때문이다. LG그룹은 지주사인 LG를 만들기 위해 그룹 주력사인 LG화학과 LG전자를 인적분할하는 과정을 거쳤다. LG화학은 지주사인 LGCI·LG화학과 LG생활건강으로, LG전자는 LGEI와 LG전자로 분할했다. 2003년 3월 각각의 지주사 역할을 하던 LGCI와 LGEI가 합병하면서 LG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LG화학의 공식적인 설립일은 기존의 (주)LG화학에서 분할됐던 2001년이 됐다.

 

LG는 별도의 사업을 하지 않는 순수지주사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수익은 LG전자, LG화학 등의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수익과 LG브랜드의 상표권 수익, 소유 건물의 임대수익 등이 있다. 2021년 말 기준 영업이익 중 배당수익 비중이 52.4%, 상표권 사용수익 34.4%, 임대수익이 13.2%를 차지했다.

LG그룹 계열사 지배구조

그동안 여러 차례 계열 분리 작업을 하면서도 분란이 없었던 배경도 지주사 체제로 전환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해석도 있다. 2004년에는 LG그룹의 공동 창업주였던 허씨 일가가 GS그룹을 분리해 나갔고 이후 GS와 LIG, LS, LF, LX, 아워홈, 일양화학, 희성그룹, LT그룹 등이 분리 독립했다. 이들 모두 LG와는 별개의 그룹으로 독자 사업을 하고 있지만 ‘범 LG家’로 불린다.

LG 기업현황

원문기사


LG  가계도

LG그룹 가계도

LG 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슬하에 6남 4녀의 자식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LG 가계도를 보시면 구인회 회장의 4명의 딸들만 빠져 있는데 4명의 딸들 전부 시집가서 출가하고 기업 경영은 남자만 했다고 한다. 장남 구자경, 차남 구자승, 삼남 구자학, 사남 구자두, 오남 구자일, 육남 구자극이 있다. 

출가한 딸의 시아버지 중 한 명이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순양기업의 모티브가 된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다. 생전에 자주 만나서 골프를 쳤을 정도로 막연한 사이였다고 한다. 구인회 회장 집안은 대대로 문인 집안이었고, 구인회 히장의 할아버지는 조선시대 고종 때 문과에 급제해  높은 벼슬을 지냈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유교적 성향이 강하해 LG 계열사에 구씨 여성이 보기 드문 이유이다.

 

장자 원칙 경영권 승계, 구인회 회장에서 구본무 회장까지

구인회

LG창업주 구인회 회장은 장자 구자경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구자경 회장은 장자 구본무 회장에게 물려줬다. 형제들이 많았지만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삼성, 현대와는 다르게 그 어떤 잡음과 왕자의 난 같은 불미스러운 일이 없었다. 가문의 성향일 수도 있는데 LG를 보면 형제간의 우애가 좋고 장자는 경영권 승계를 하고 다른 아들들은 계열사 분리해 독립한다고 한다. 

 

아들 잃은 구본무 회장

 

구본무, 구광모

구본무 회장은 외아들 구원모를 뒀는데 안타깝게도 1994년 향년 19세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 당시 상심이 컸던 구본무 회장은 다시 아들을 얻으려고 1996년에 51세인 몸으로 자녀를 다시 얻었지만 아들이 아닌 딸이었다고 한다. 50세를 넘긴 나이에 다시 아들을 보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는지 60살이 되자 조카 구광모를 양자로 입적했다.

 

LG의 새로운 젊은 회장 구광모

구광모 회장은 2018년 5월 20일 갑작스레 타계한 고(故) 구본무 전 화장의 후임으로 같은해 6월 29일 취임했다. 그때 당시 구광모의 나이는 만 40세였다. 구광모 회장은 겸손하고 소탈한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동료 직원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등 소탈하게 지냈지만, 업무에서는 강한 실행력과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미래의 LG

LG에너지솔루션

구광모 회장은 LG그룹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며 새로운 먹거리인 미래 사업을 키우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회장 취임 후 LG가 매각하거나 철수한 사업만 10여개에 달한다. 대신 전기차 배터리, 자동차 전장 분야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인수합병(M&A), 합작법인(JV)을 통해 전략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 

LG는 배터리와 전자가 주력 사업인 만큼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선도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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