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이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2030년까지 전 세계 잠재 성장률이 30년 만의 최저까지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최근의 금융권 혼란이 더 큰 위기로 확대될 경우 잠재 성장률이 더 떨어질 수 있다고 봤다. 각국 정책입안자들의 대담한 성장 대책이 없다면 전 세계가 '잃어버린 10년'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경고다.
27일(현지시간) 세계은행은 560여 페이지 분량의 이 같은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는 전 세계 잠재 성장률이 2022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2.2%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200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2000~2010년 세계는 연평균 3.5% 성장했고 2011~2021년엔 연평균 2.6% 성장률을 기록한 바 있다.
인더밋 길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잠재 성장률이 떨어지는 배경으로 과거 고속 성장기에 비해 노동력이 줄고 투자와 무역이 감소하는 점을 짚었다. 이어 "세계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에 처할 수 있다"면서 "잠재성장률의 둔화는 지구촌이 고질적인 빈곤, 빈부 격차, 기후 위기 같은 시대적 도전과제에 맞서는 능력을 심각하게 저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이 기업에 엄청난 불확실성을 야기하면서 전 세계 투자 성장률을 지난 20년의 절반 수준까지 끌어내렸다고 언급했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정학적 불안을 키우고 유럽을 중심으로 산업과 투자에 직격탄을 날렸다고 꼬집었다.최근의 금융시장 혼란도 잠재성장률을 더 끌어내릴 수 있는 위험요소로 거론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붕괴로 시작된 은행위기가 광범위한 신용 경색으로 이어지면 금융위기나 세계적 경기침체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현재 각 국의 정책입안자들이 주시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크리스티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역시 지난 26일 베이징에서 열린 중국발전고위급포럼에서 은행권 위기로 세계 금융 안정성에 위험이 커졌다며 정책입안자들이 상황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세계은행은 각국 정책 당국이 지속 가능한 성장 지향 정책을 펼친다면 잠재성장률을 최고 2.9%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고 기대했다. 성장률 가속이 얼마든지 가능한 옵션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전 세계적으로 대담하고 집단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고 은행은 강조했다.
세계은행은 우선 장기 성장을 촉진하기 위해 노동시장 밖에 있는 여성의 노동 참여를 끌어올려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경우 남아시아, 중동, 북아프리카 지역의 잠재 성장률을 1.2%포인트(p)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다.
보고서는 또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공조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고 강조했다. 지금 같은 고인플레이션 시대엔 물가 성장률을 억제하고 금융 안정성을 확보하는 한편,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 투자 신뢰도를 높이는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다.
세계은행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투자도 늘려야 한다고 봤다. 특히 교통, 에너지, 농업, 토지, 수자원 시스템 등에 투자하면 기후 위험을 낮추고 잠재 성장률을 연간 0.3%p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관세 폐지와 교역 절차 단순화 등을 통해 무역 비용을 낮추고, '성장의 새로운 엔진'인 디지털 서비스 분야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확대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