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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치민시

베트남이 보름 만에 정책금리를 또 내렸습니다. 일국의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린지 불과 보름 만에 또 금리인하 결정을 내렸다는 건 처한 경제상황을 매우 비관적으로 내다보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미미한 베트남 금리 인하에 우리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의문인 분도 있으실 겁니다. 맞습니다. 베트남은 1인당 GDP가 4000달러대에 불과한 동남아의 개발도상국입니다. 하지만 국제 정세에서 베트남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를 생각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술이 발달하기 전 과거 광부들은 탄광에 들어갈 때 카나리아를 데려갔다고 합니다. 탄광에서 유독가스가 나오면 카나리아가 먼저 쓰러지며 위기를 알렸기 때문입니다. 한국 경제 역시 높은 수출 비중 때문에 ‘탄광 속 카나리아’에 주로 비유되곤 합니다.

 

베트남 역시 그런 지표로 활용될 여지가 많은 나라입니다.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 간 무역 분쟁이 격화될 무렵부터 중국을 떠난 공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틈새시장’ 전략을 써왔습니다. 실제 애플을 비롯한 수많은 제조업체들이 중국에서 공장을 뜯어 베트남에 새로 시설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베트남은 FDI를 통한 경제성장 전략을 펴왔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이런 전략을 고수할 계획입니다. 그렇다면 베트남 경제가 둔화됐다는 얘기는 글로벌 제조업체들이 해외 투자를 상당히 줄이고 있다는 얘기가 되고 이를 통해 베트남 경제가 힘들어지자 중앙은행이 연속적인 금리인하를 통해 내수시장 진작에 나섰다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벌어진 상황과 함께 통계를 보겠습니다.

 

베트남중앙은행(SBV)은 지난 3일 새로운 정책금리 조정안을 내놨습니다. 사실상 기준금리로 대체될 수 있는 재융자금리를 기존 6%에서 5.5%로 0.5%포인트 내렸습니다. 1~6개월 미만 동화(VND)표시 예금금리 상한도 6%에서 5.5%로 인하했습니다. 금융기관 간 초단기로 돈을 빌려주는 오버나이트 금리 정도만 이전 수준으로 유지했을 뿐입니다.

 

SBV는 지난 3월 15일 기존대비 금리를 1%포인트 깜짝 인하하며 전 세계 개발도상국 중 처음으로 금리인하에 돌입한 바 있습니다. 주요 선진국들이 가파른 물가 인상을 우려해 금리를 인상하는 와중에 내린 돌발행보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채 한 달도 안 돼 금리를 추가로 내리는 ‘슈퍼 비둘기 행보’에 나선 것입니다.

 

이는 베트남 경제가 상당히 둔화되고 있는 신호가 잡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통계청에 따르면 이 나라 1분기 경제성장률은 13년래 최저 수준인 3.32%에 불과했습니다. 지난 2020년 1분기 3.21%를 기록한 것과 비슷할 정도로 경제가 둔화됐습니다.

베트남 경제성장률

그런데 2020년 1분기는 코로나19가 막 터져 전 세계가 신음하던 때였습니다. 멀쩡하게 길을 걷던 사람이 픽픽 쓰러진다는 괴담이 확산되며 공포감이 극도에 달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와 비견될 만큼 나라 사정이 어려워진 것입니다.

 

좀 더 자세한 통계를 살펴보겠습니다. 베트남 경제에 직격탄을 날린 주요 변수 중 하나는 수출과 FDI의 의미 있는 감소입니다. 이게 전년 대비 각각 11.9%와 39% 줄었습니다.

 

베트남 경제는 앞서 말씀 드린대로 해외 투자를 받아 자국에 공장을 세우고, 거기서 나온 완성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비즈니스를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출이 12%가까이 확 줄었고 FDI는 무려 40%가까이 ‘빵꾸’가 났습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역시 올해 베트남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2월 제시한 7.5%에서 4개월만에 6.5%로 확 내렸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1분기 베트남 CPI가 4.3% 상승으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서도 보름 만에 금리 인하에 나서며 내수경기 회복을 꾀한 것입니다.

 

내수 시장을 봐도 문제가 심각합니다. 소비 위축 징후가 뚜렷합니다. 베트남 1~2월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대비 27% 감소했습니다. 같은 기간 스마트폰 판매량은 약 250만대로 전년 동기의 350만대에서 약 30%가 줄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이 시기 스마트폰 판매량은 5~15% 늘었는데 정반대 현상이 나타난 것입니다.

 

많은 수의 베트남 사람들은 무리해서라도 좋은 스마트폰을 삽니다. 여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파르게 금리가 올라가고 신용정책이 강화되자 무이자 할부판매를 비롯한 유통 채널이 잇달아 셧다운에 돌입한 여파가 컸습니다.

 

베트남이 보름 만에 금리를 재차 인하한 것은 이 같은 대내외 경제상황이 엄중하다는 것을 인식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이 동남아 신흥국 중 하나이지만 베트남 중앙은행의 숨 가쁜 행보를 우리는 관심 있는 눈으로 지켜봐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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