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교수 등 전문가 아닌 '기업가' 꿈꾸며 미국 정착
의사보다 높은 반도체 엔지니어 연봉에 인재 몰려
자동차·조선·전자 등 다양한 산업 발전한 한국과 달리 반도체 산업만 성장
1. 제조업을 기반으로 성장했다.
2. 반도체가 수출 대들보 역할을 한다.
3.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높지만 미국의 동맹국이다.
4. 글로벌 빅테크 시장을 주무르는 CEO를 배출했다.
5. 이 국가의 올해 주가 상승률은 미국 S&P 500보다 높았다.
한국이면 좋겠지만 대만 얘기다.대만 대표 기업TSMC는 2019년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을 추월했고, 지금은 아시아 기업 중 유일하게 글로벌 시가총액 10위에 올라섰다.
IT산업의 격전지 미국에서도 대만계 CEO들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주인공 엔비디아, AMD, 슈퍼마이크로컴퓨터(SMCI)의 CEO 모두 대만계다.
“그래봤자 검은머리 미국인 아니냐”는 얘기는 몰라서 하는 소리다. 엔비디아, AMD, SMCI와 대만 대표 기업 TSMC는 저마다 수십 년에 걸친 파트너십을 이어왔다.
세계경제 순위 10위 안에도 든 적 없고 인구는 한국의 절반, 나라 면적도 경상도 수준인 대만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1. 인천공항(김포공항)과 타오위안공항을 떠나는 마음가짐“왜 한국인 CEO는 없나?”
미국 빅테크 기업의 거물들을 들여다보면 생기는 의문이다. 미국정책재단에 따르면 이민자들은 과거처럼 지금도 가장 뜨거운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민자들은 미국 내 상위 AI 관련 기업 43개 중 28개(65%) 창업에 기여했고, 현재 AI 분야 대학원생의 70%가 해외 유학생이다. 나라도 제각각이다. 인도, 이스라엘, 알바니아, 중동 등 전 세계 천재들이 미국으로 모인다. 이런 천재들의 경쟁에서 대만계의 약진은 눈부시다. 인프라 산업뿐만이 아니다.
IT붐이 일어난 2000년대 초 한 시대를 장식했던 야후의 창립자(제리 양)를 시작으로 유튜브 공동창업자(스티브 첸), 엔비디아 창업자(젠슨 황), AMD를 위기에서 구해낸 리사 수, 엔비디아보다 주가가 훨씬 더 오른 파운드리 업체 SMIC(찰스 량) 등이 모두 대만계다.
독학으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을 배워 19세에 애플에 입사한 오드리탕 대만 디지털 장관도 실리콘밸리에서는 ‘천재들의 천재’로 불렸다.
미국 이민자나 유학생 수는 대만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았다. 2023년 기준 미국에서 공부하는 한국인은 4만3847명이었고 대만인은 2만1834명이었다.인구가 2배 더 많아서인지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한국과 대만의 미국 유학생 수치는 매년 2배 정도 차이가 났다. 절대적인 숫자는 한국인이 많지만 미국에서 크게 성공한 한국인 창업자는 찾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한국과 대만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이를 갈랐다고 분석했다. 한국은 1990년대에 이미 삼성, LG, 현대, 대우 등 대기업이 등장했다. 미국에서 엔지니어로 성공하더라도 한국에서 그들을 수용할 만한 적절한 인프라가 마련돼 있었다.
대만은 달랐다. 반도체나 부품 중소기업을 위주로 경제가 성장했다. 그 외에는 섬유나 화학 등 위탁제조업 일자리가 대다수였다. 한국인은 미국 유학 후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대기업 시스템에 편입될 수 있었지만 대만인들은 창업이나 미국 현지 취업이 그들에게 더 유리했다는 것이다.
“한국인과 대만인의 시작점과 선택지가 달랐다. 1990년대에 한국인은 교수, 연구자, 변호사, IB 금융인, 컨설턴트 등 ‘프로페셔널(전문가)’을 목표로 삼고 미국을 향한 사람들이 많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전통 대기업 외에도 IT 기업이 성장하면서 네이버, 다음, 넥슨 등 한국인 엔지니어를 받아줄 풀이 더 넓어졌다.
한국 인재들은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느니 미국에서 성공한 비즈니스 모델을 들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목표를 가지게 됐다. 반면 대만인은 미국에서 뿌리내려 성공하겠다는 ‘앙트레프레너(기업가)’를 목표로 삼고 떠났다.”
문규학 소프트뱅크 비전펀드 경영파트너의 분석이다. 수많은 혁신 기업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그는 “타오위안공항을 떠나는 사람과 인천공항을 떠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만인 금융전문가 역시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대만 증권업계에서 일하는 A 씨는 “대만인들은 한국인과 달리 귀국을 목표로 유학이나 이민을 가지 않는다”며 “특히 1980~90년대에 미국으로 떠난 대만인들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 더 절박한 각오로 미국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12세기 중국대륙에서 넘어온 중국인들이 토착세력을 형성하고 살아오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된 대만의 정치적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대만중앙연구원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고 있는 김진호 단국대 교수는 일본으로부터 이어받은 교육문화, 이공계 종사자를 위주로 성장한 산업구조, 정부 주도의 반도체 산업 발전이 대만인들의 저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인의 성격과 일본이 만들어 놓은 사회 구조에 국민당의 ‘교육 강조’ 정치가 합쳐지면서 대만인 특유의 기질이 형성됐다”며 “미국으로 넘어간 대만인들은 교육, 근면, 성실을 강조하는 유교적인 가족문화와 뛰어난 적응력을 기반으로 미국에서 수많은 대만계 CEO가 탄생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과 대만의 엔지니어에 대한 인식이 달랐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에서 건너간 천재들은 상당수가 엔지니어보다는 연구의 길을 걷고 싶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대만인들은 엔지니어에 대한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브랜드를 내세우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버는 게 중요하다”는 중화 특유의 실용주의도 대만계의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2. 패스트 팔로어와 퍼스트 펭귄
전문가들의 분석처럼 대만계 CEO들은 기업가 정신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미 존재하는 시장의 패스트 팔로어가 되고, 이를 넘어서 1인자로 올라서는 한국계 기업가들과는 다른 전략이었다.
대만계 CEO의 역할은 개척자였다. 대만 출신 이민자인 제리 양은 세계 최초의 포털 서비스 ‘야후’를 창업하며 인터넷 시대 부흥을 이끌었다. 유튜브 창업자 스티브 첸은 포털이 막강하던 시대에 동영상 검색 사이트를 창업했다.
대만 본토를 반도체 강국으로 이끈 TSMC의 모리스 창은 반도체 사업의 분업화를 예견하며 ‘파운드리’라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가지고 대만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현재 전 세계 반도체의 60% 이상이 대만에서 생산된다.
대만에서 태어나 9살에 미국으로 건너간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GPU’라는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1999년 엔비디아가 내놓은 ‘지포스256’이 세계 최초의 GPU다. 단순한 그래픽카드가 아닌, 중앙처리장치(CPU)와 대등한 역할을 맡는 주요 반도체란 의미로 엔비디아가 GPU라 명명했다. 과거만 해도 GPU 시장은 틈새시장에 가까웠다.
PC 시장은 인텔의 CPU가 점령했고 모바일 시대에는 퀄컴과 미디어텍의 AP가 시장을 양분했다. 엔비디아의 GPU는 게임 마니아들 사이에서만 이름을 날리다 2017년 비트코인 붐이 시작되면서 한 번 뛰었고, 2022년 AI 시대를 만난 뒤로는 절대권력을 차지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6월 시총 1조 달러를 넘어섰고, 지난 2월 23일에는 뉴욕증시에서 반도체 기업 최초로 시가총액 2조 달러를 돌파했다. 구글과 아마존을 제치고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에 이어 세계 3위 기업에 올랐다.
젠슨 황은 최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엔비디아는 늘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며 “나는 기회가 오면 모든 것을 다 걸어서 잡았다”고 말했다.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 AMD의 두 번째 전성기를 이끈 리사 수 CEO 역시 엔지니어 출신답게 기술 혁신을 이끌었다. 젠슨 황과는 친척 관계인 리사 수는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전자공학 박사까지 마친 반도체 전문가다. 그는 반도체 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프리스케일(Freescale)을 거쳐 26세에 IBM 임원 자리에 올랐다.
리사 수 역시 안전한 길을 선택하기보다는 모험을 즐기는 기업가 유형이었다. 리사 수는 한 인터뷰에서 ‘왜 AMD를 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미 잘나가고 있는 기업은 ‘쉬운 선택지’지만 매력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CEO 자리에 오른 후 CPU와 GPU가 통합된 APU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AMD의 7년 적자 고리를 끊고 2013년 회사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3. 의사보다 높은 연봉에 인재 몰렸다
“반도체 기업만큼 고연봉 직장이 없다.”
반도체 업계 종사자들에게 대만이 왜 강한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이다. 대만은 의사보다 반도체 기업 종사자의 연봉이 더 높다. 의사 연봉은 다른 나라 대비 낮은데, 반도체 엔지니어의 연봉은 한국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2022년 대만 노동부의 직업별 급여 현황 조사에 따르면 대만에서 의사의 평균 연봉은 230만 대만달러. 한화로 9700만원 수준이었다. 반면 대만 반도체 기업 미디어텍과 TSMC의 2022년 비관리직 직원 연봉 중앙값은 각각 374만7000대만달러(약 1억6112만원)과 243만5000대만달러(약 1억471만원)였다.
대만 임금 근로자 소득은 한국의 69%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대만 반도체 종사자의 연봉은 대만 평균의 4~5배 수준이다.
이필상 미래애셋자산운용 홍콩법인 전무는 "다른 어느 산업 대비해서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높은 평균 임금을 줄 뿐만 아니라 반도체 및 공학을 전공할 경우 향후 미국 등의 글로벌 기업에 취업할 가능성도 높다"며 "미국으로 유학 혹은 취업한 대만인들이 향후 미국 기업과 자국의 반도체산업을 연결하는 네크워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대만 최고 인재들이 한 쪽으로 몰렸고 그 때문에 반도체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게 됐다는 분석이다.
대만이 반도체 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분야는 시스템반도체다. 시스템반도체는 한국이 1, 2위를 점유한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모든 반도체 사업을 말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차지한다. 시스템반도체는 크게 설계와 생산 분야로 나뉜다. 개발과 설계를 전문으로 하는 곳을 팹리스(fabless), 팹리스 주문을 받아 생산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을 파운드리라고 부른다. 생산된 칩을 기기에 넣을 수 있는 상태로 가공하는 ‘패키징’도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이루는 중요한 축이 된다.
대만은 시스템반도체 생태계의 모든 분야에서 슈퍼 파워를 가지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2023년 대만 파운드리 기업의 시장점유율은 67%로 세계 1위다.
후공정(패키징·테스트) 분야 역시 50%가 넘어 단연 1위였다. 팹리스는 20.8%로 세계 2위였다. 반면 한국의 점유율은 파운드리 12%, 후공정 6%, 팹리스는 단 1%에 불과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 두 곳을 필두로 성장한 한국과 달리 대만은 설계부터 생산, 후공정까지 시스템반도체 전 과정에 해당하는 생태계가 탄탄하게 조성돼 있는 것이다.
한국은 대량생산과 규격화로 규모의 경제를 이뤄야 하는 메모리 반도체로 승부했고 규모의 경제가 불가능했던 대만은 ‘다품종 소량생산’과 분업화가 철저한 시스템반도체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고객의 요구와 설계에 따라 ‘맞춤형’으로 반도체를 생산한다. 고객사의 기술과 설계가 고도화될수록 오랫동안 합을 맞춘 파운드리나 패키징 사업도 함께 경쟁력을 갖게 된다. 엔비디아, 퀄컴, AMD, 미디어텍 등 팹리스 기업들이 기술혁신을 타고 성장하는 동안 TSMC 역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다.
한국처럼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다양한 산업이 발전할 수 없던 환경 역시 반도체에 ‘올인’한 배경으로 꼽힌다. 글로벌 브랜드도 없고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인터넷 기업도 없는 와중에 의사 연봉마저 적어서 이과 인재가 반도체 산업으로 몰렸다.
전황수 ETRI 책임연구원은 “대만 수출품목 중 1위부터 10위까지가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관련 산업”이라며 “대만이 국가 주도로 ICT 산업을 성장시키면서 신주과학단지를 글로벌 혁신 클러스터로 만들어 생태계 전반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었고 대만계 글로벌 CEO나 엔지니어들과 쌓은 긴밀한 네트워크로 첨단산업 육성에 필요한 외국 기술과 자본, 유능한 과학 인력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4. 밀어주고 끌어준다
중화권 특유의 끈끈한 네트워크
“당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작은 회사의 사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모리스 창 TSMC 전 회장에게 전한 감사인사다. 엔비디아와 TSMC는 팹리스·파운드리로서 함께 성장해 왔다.
엔비디아의 첫 GPU였던 ‘지포스’의 밑거름이 된 그래픽카드는 RIVA 128이었다. RIVA 128 제품이 출시됐을 때 엔비디아에 남은 돈은 직원들 한 달 치 월급 정도였다. 엔비디아가 RIVA 128로 50억원 이상을 벌었지만 TSMC가 물량을 받아줄 정도는 아니었다. 예산이 부족했던 엔비디아는 이도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팹리스는 파운드리 없이 클 수 없다. 팹리스가 반도체를 설계하면 파운드리가 하나의 웨이퍼에서 여러 고객사의 반도체 시제품을 제작하는 ‘멀티프로젝트웨이퍼(MPW)’ 과정을 거친다. MPW는 팹리스가 R&D나 시제품 제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예산이 부족했던 젠슨 황은 모리스 창에게 직접 편지를 썼다. 모리스 창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고 지금까지 30년에 가까운 협력이 이어지고 있다. AMD와 미디어텍 역시 TSMC에 물량을 몰아주고 있다.
같은 해에 설립된 SCMI 역시 엔비디아와 끈끈한 협업을 이어오고 있다. 대만계 CEO가 이끄는 두 회사의 본사는 서로 10마일 이내에 있었다. 데이터센터용 서버부품을 설계하는 SMCI는 엔비디아 GPU와 30년 넘게 동기화했다.
찰스 량 SMCI CEO는 CNBC에 “엔비디아가 무엇을 개발하든 우리는 그들과 거의 동기화된다”며 “이것이 그들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우리가 경쟁사보다 더 빨리 신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그 결과 SMCI 주가는 1년 동안 895%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