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철금속 제련 세계 1위 기업
고려아연 두고 경영권 확보전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이 국내 최대 규모의 적대적 M&A(인수·합병)로 커지고 있다. 영풍과 손잡고 지난 13일 주식 공개 매수를 시작해 경영권 확보에 나선 사모펀드 MBK가 26일 매수 가격을 1주당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인상했다.
현재 기준으로 MBK 측이 약 3조6000억원, 고려아연이 1조1300억원 등 양측이 투입하는 자금 합계가 5조원에 육박하는 초유의 ‘쩐의 전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향후 한쪽이 주식 공개 매수 가격을 더 올릴 경우 규모는 더 커질 수 있다.
방어에 나선 고려아연 역시 MBK 측에 대항해 주식 공개 매수로 지분 확보를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글로벌 IB(투자은행)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방어에 필요한 최대 1조원 안팎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세계 3대 사모펀드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과 접촉을 해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려아연은 세계 1위의 비철금속 제련 기업이다. 전자·전기,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 등 주요 산업에 아연·동·은 등 기초 원자재를 제공하는 공급망의 주축이기도 하다. 고려아연은 이런 회사의 경영권이 해외 자본의 투자도 많이 받는 사모펀드에 넘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현재 고려아연 현 경영진은 이런 ‘명분’에서 앞서고, MBK는 ‘자금력’에서 상대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6일 사모펀드 MBK와 영풍은 주식 공개 매수 가격을 66만원에서 75만원으로 13.6% 올렸다. 1990년 고려아연이 상장된 후 공개 매수 개시 전까지 역대 최고가는 67만2000원이었는데 이보다도 11% 이상 높은 수준이다. 10월 4일까지 예정된 공개 매수에서 아직 충분한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상황이라, 기관 투자자 등에 더 적극적으로 주식을 자기들 쪽에 팔아달라는 구애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이 경영권이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항 주식 공개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한다. MBK 측이 여기에 맞서 공개 매수 가격을 또 올릴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일각에선 이 과정에서 공개 매수 가격이 90만원대에 이를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LG, SKT보다 시총 커진다
재계에서는 고려아연이 MBK·영풍의 과반 지분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기존 우호 세력을 빼고 주식 공개 매수 등으로 최소 6% 이상의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한다고 본다. 1주당 75만원을 기준으로 필요한 자금은 약 1조1300억원 안팎으로 예상된다.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를 비롯한 북미 등의 다수 사모펀드를 중심으로 자금 조달 방안을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본시장법은 주가조작 가능성 등을 막기 위해 주식 공개 매수 기간에는 공개 매수자와 매수자의 특별 관계자가 공개 매수가 아닌 방법으로 장내에서 지분을 늘리는 것을 금지한다. MBK는 고려아연이 MBK와 손잡은 영풍과 지분 관계로 얽혀 있는 특별 관계자인 만큼, 장내에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사면 불법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두고 현재 양측의 법적 분쟁이 진행 중이라, 고려아연도 대신 지분 매입을 해줄 사모펀드 등 우군을 찾는 중이다. 최윤범 현 회장 등 최씨 일가는 개인 자격으로 공개 매수 기간 막바지에 지분 매입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현재 공개 매수 가격인 75만원까지 주가가 오르면, 고려아연의 시가총액은 15조50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공개 매수 직전인 지난 12일 11조5000억원에서 약 35%가 늘어나는 것으로, 전체 코스피 상장사 중 30위권 후반에서 20위권 중반으로 뛰어오르게 된다. 시가총액 12조원대인 LG그룹 지주사인 ㈜LG나 SK그룹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 HD한국조선해양 등을 훌쩍 앞서게 되는 것이다.
한 대기업 임원은 “고려아연의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의미도 되지만, 반대로 시가총액 15조원대 기업도 MBK 등 사모펀드가 마음을 먹으면 경영권을 가져올 수 있을 정도로 금융 자본이 막강하다는 뜻이라 긴장하는 기업이 많다”고 말했다.
◇모두가 부담인 경쟁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양측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많다. MBK는 공개 매수에 2조2272억원, 영풍 지분을 최종적으로 인수하는 데 1조4000억원 등 총 3조6272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본시장 안팎에선 MBK가 최소 4조원 이상이 모인 별도 투자 펀드에서 자금을 끌어올 계획이라 ‘실탄’이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비싸게 살수록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는 걸 우려할 것이란 지적이 많다.
고려아연 역시 경영권을 최윤범 회장 측이 가진 상태에서 대규모 자금을 유치해야 하기 때문에, MBK에 비해 불리한 조건으로 자금 조달 계약을 맺어야 하는 부담이 있을 수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 25일 기업어음(CP)을 발행해 4000억원을 확보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 회사가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회사채나 어음 등 차입 형태로 조달한 것은 2001년 이후 23년 만이다.
재계에서는 예상보다 더 치열한 머니 게임이 진행되면서, 고려아연의 장기 경쟁력 저하를 우려한다. 고려아연은 중국 등의 공습에 맞서 신재생이나 이차전지 등 미래 성장 동력 분야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그러나 누가 경영권을 갖든, 배당 확대 등 인수전에서 든 비용을 만회하는 과정에서 R&D(연구개발) 여력이 줄어드는 등의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적대적 M&A(인수·합병)
기업의 현 대주주나 이사회의 동의 없이 외부 세력이 기업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강행하는 인수·합병을 말한다. 반대로 인수·합병되는 기업과 매수자 간의 합의가 있는 경우를 우호적 M&A라고 한다.